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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당연한 기각 결정 내리면서 한편으로 검찰 손 들어준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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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당연한 기각 결정 내리면서 한편으로 검찰 손 들어준 법원
  • 고일석
  • 승인 2019.12.27 0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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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성 인정하기 어렵다"면서도 "혐의 소명됐다"는 법원
영장 기각으로 검찰이 받게 될 타격 최소화
"이 쯤 하고 영장재청구는 하지 말라"는 뜻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2019.12.26/뉴스1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2019.12.26/뉴스1

서울동부지방법원은 27일 새벽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기각 사유에서 “범죄의 중대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범행의 죄질이 좋지 않다”는 등의 엇갈리는 평가를 내렸다.

법원이 발표한 '조국 전 법무장관 구속영장 기각 사유'는 아래와 같다.

 

조국 전 법무장관 구속영장 기각 사유

-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함

- 이 사건 범죄혐의가 소명되는데도, 피의자가 일부 범행경위와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있기는 하나, 이 사건 수사가 상당히 진행된 사정 등에 비추어보면, 현 시점에서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에 해당하는 구속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움.

- 피의자가 직권을 남용하여 유○○에 대한 감찰을 중단한 결과, 우리 사회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후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저해한 사정이 있기는 하나, 피의자의 사회적 지위, 가족관계, 구속 전 피의자심문 당시의 진술내용 및 태도, 피의자의 배우자가 최근에 다른 사건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점 등과, 범행 당시 피의자가 인식하고 있던 유○○의 비위내용, 유○○가 사표를 제출하는 조치는 이루어졌고, 피의자가 개인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이 사건 범행을 범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구속하여야 할 정도로 범죄의 중대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려운 점을 종합해보면, ‘도망의 염려가 있는 때’에 해당하는 구속사유가 있다고 볼 수도 없음.

- 결국 현 단계에는 피의자에 대한 구속 사유와 그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려움.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에 해당하는 구속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을 앞세우면서도 "이 사건 범죄혐의가 소명되는데도, 피의자가 일부 범행경위와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범죄 소명'을 부연하는 부분에서는 "직권을 남용"했고, "감찰을 중단"했으며, "우리 사회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후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저해한 사정이 있다"며 마치 판결을 내리듯 자세하고 단정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 아래 부분에서는 "범행 당시 피의자가 인식하고 있던 유○○의 비위내용, 유○○가 사표를 제출하는 조치는 이루어졌다는 점 (중략) 등에 비추어 구속하여야 할 정도로 범죄의 중대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앞의 판단과 상반되는 또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다. 

앞의 부분은 영장이 기각될 경우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던 검찰이 환호를 올릴 만한 내용이고, 뒷 부분은 조 전 장관 측이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는 내용이다.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 여부는 영장 발부 혹은 기각 여부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요소이다. 이 부분에 대해 매우 명확한 판단을 내리면서도 한 쪽은 검찰의 편을 들어주고 다른 한 쪽은 조 전 장관의 손을 들어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죄지은 건 맞는 것 같고 죄질은 나쁘지만, 그다지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어 구속할 이유는 전혀 없다"가 되겠다. 

법원은 기각결정문을 왜 이렇게 오락가락하면서 찝찝하게 썼을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나서며 구치소 관계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2019.12.27/뉴스1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나서며 구치소 관계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2019.12.27/뉴스1

우선 구속영장 발부 혹은 기각 결정문에서 사용되는 "범죄가 소명된다"는 표현은 "유죄가 확정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유죄 입증의 정도가 절반 넘는 정도"라는 뜻이다. 그러나 법원은 그 뒤에 '범죄'의 내용을 단정적으로 제시하고 '법치주의 후퇴',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 저해' 등의 평가를 덧붙여 "유죄 입증의 정도"가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높은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구속 여부'만 놓고 본다면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는 것은 다른 어떤 사정도 뒤집기 어려운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기각 사유인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 부분에서는 조국 전 장관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범죄 혐의 소명과 죄질’은 검찰의 체면을 살려줌으로써 영장 기각으로 검찰이 받게 될 타격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범죄 소명' 부분을 이례적으로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서술하여 영장 기각으로 실망하게 될 검찰을 달래주려는 과도한 배려로 읽히기도 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법원이 이미 혐의 소명 여부와 죄질에 있어 과도할 만큼의 표현을 들어가며 인정했으므로 검찰이 추가 보완을 통해 영장의 재청구를 시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관련 문서들이 폐기됐다"며 증거인멸의 우려를 강조했던 검찰의 주장은 완전히 기각됐으므로 영장 판단의 가장 중요한 요건인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 부분을 따로 입증하기 못한다면 영장 재청구는 사실상 어려워진다. 

즉 "이 정도 했으니 영장 재청구는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특히 "이 사건 수사가 상당히 진행된 사정"이라는 부분에서는 "수사도 할 만큼 했으니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라"는 조언과 충고의 뜻도 담겨 있다.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법원 앞에서 조 전 장관 지지자들이 구속영장 기각과 검찰개혁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12.26/뉴스1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법원 앞에서 조 전 장관 지지자들이 구속영장 기각과 검찰개혁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12.26/뉴스1

법원의 이러한 오락가락하면서 다중적인 기각 결정문은 검찰에게 '절반의 승리'를 선언해준 것이다. 따라서 이미 진실을 가리는 것을 넘어서서 검찰과 보수언론의 정치적 선전전과 여론전으로 변질되어버린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 및 재판에 있어서 공세를 이어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빌미를 마련해준 셈이다. 

벌써 언론들은 일제히 "범죄 소명"을 앞세워 보도하고 있으며 "일부 범행경위와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있다"고 한 부분과 "'법치주의 후퇴와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 저해"를 언급한 부분을 "죄질이 나쁘다"로 단정적으로 뭉뚱그려 표현하고 있다. 앞으로 진행될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여론전의 방향을 가늠케 해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결국 "범죄의 중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 법원의 영장기각 결정문을 보더라도 '감찰 종결'을 '직권남용'으로 몰고가려는 검찰의 의도는 그 뜻을 이루기 쉽지 않아 보인다. 

검찰이 자그마치 11개의 혐의를 들어 정경심 교수를 구속할 당시에도 법원은 "범죄 혐의 상당 부분이 소명되고 현재까지 수사 경과에 비춰서 증거 인멸 염려가 있으며 구속의 상당성도 인정된다"며 매우 강력한 표현으로 구속 사유를 밝혔다.

하지만 재판 준비기일에서부터 검찰이 제시한 혐의 입증이 허점투성이인 것이 확인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조 전 장관의 재판 과정에서는 더 큰 허점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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