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수 감찰 건에 대한 검찰과 언론의 주장은 "박형철 비서관이 계속 감찰 혹은 수사 의뢰를 주장하는데도 조국 당시 수석이 감찰을 중단시키고 기관 통보로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이하 직책은 당시 직책)
조국 수석이 결정한 ‘기관 통보’는 박형철 비서관의 의견에 따른 것이었다. 박형철 비서관은 유재수 건에 대한 감찰보고서를 작성해 조국 수석에게 보고했고, 이때 ▲수사 의뢰 ▲ 감사원 이첩 ▲ 기관 통보 등 세 가지 방안을 ‘조치 의견’으로 제시했다.
조국 수석은 감찰보고서의 내용을 토대로 금융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백원우 민정비서관을 불러 박형철 비서관과 함께 논의한 끝에 박 비서관에 제시한 세 가지 방안 중에 기관 통보로 결정한 것뿐이다.
보고서에 ‘조치 의견’을 담았다는 것은 곧 감찰이 종료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원우 전 비서관이 12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감찰 결과 보고서를 가져와 회의를 할 때는 이미 감찰이 종료되고 그 처리 결과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였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이었다.
유재수 건에 대해 감찰 불응과 잠적 등으로 인해 더 이상의 감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조치 의견’을 담아 최종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박형철 비서관이었다.
박형철 비서관이 ‘기관 통보’를 포함한 ‘조치 의견’을 정리해 보고하기 전까지는 조 수석이나 백원우 비서관이나 기관 통보든 수사 의뢰든 유재수 감찰의 조치에 대한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가지고 있을 수도 없었다.
이 논의에서 박형철 비서관은 수사 의뢰를 우선하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기관 통보 역시 적절한 조치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고, 최종적인 기관 통보 결정에 대해서도 전혀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김태우의 폭로에 가장 강경했던 박형철
최초 이 문제가 불거졌던 2018년 12월 김태우 전 수사관의 폭로 당시 청와대는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흐리고 있다”는 등의 강경한 메시지를 발표했다. 사안의 진상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실무책임자의 입장이 확고하고 강경했기 때문이다.
그 실무책임자가 바로 박형철 비서관이었다. 청와대가 파악한 진상은 모두 박형철 비서관이 정리하여 보고한 내용이었다. 박형철 비서관은 청와대의 대응 직후 직접 나서서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하며 격앙된 어조로 김태우가 제기한 의혹들을 조목조목 해명하기도 했다.
박형철 비서관은 김태우가 제기한 내용을 포함해 감찰 업무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감찰 업무는 민정수석실의 여러 업무 중 하나에 불과했다. 조국 수석이 이에 대한 총괄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감찰 업무에 일일이 개입하여 지시하는 일은 없었다. 민정수석실의 감찰 업무는 본질적으로 박형철 비서관이 관장했던 업무였다.
문제가 불거질 당시 조 수석은 자신이 결정한 조치의 내용은 알고 있었으나 감찰 경위와 경과에 대한 내용은 세세하게 기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세한 내용은 박형철 비서관의 보고를 통해 파악할 수밖에 없었고, 2018년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서 답변한 내용도 박형철 비서관이 보고한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검찰 출두 직전까지도 “문제없다”던 박형철
유재수 감찰 건이 다시 떠오른 것은 10월 30일 서울동부지검이 대보건설 본사를 압수수색하면서부터였다. 검찰은 이 압수수색이 ‘유재수 감찰 중단 의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우가 유재수 등을 고발한 지 8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 당시 청와대는 검찰 수사에 대해 대응하지 않았다. 모든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박형철 비서관이 2018년 12월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전혀 문제없다”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11월 중순 박형철 비서관이 검찰 조사를 받고 그가 이런저런 내용의 진술을 했다는 보도가 이어질 때도 반응하지 않았다. 검찰의 언론플레이로만 생각했었다.
박형철 비서관이 11월 27일 사표를 낼 당시에도 박형철 비서관에 대한 청와대의 신임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바로 다음 날인 11월 28일에도 청와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충분히 해명이 가능한 의혹”이라며 “결국 고위공직자에게 사실상 강도 높은 인사조치를 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모두 박형철 비서관이 그동안 일관되게 설명해온 내용이었다.
그러나 여러 경로를 통해 박형철 비서관이 검찰에서 “감찰 중단은 조국 수석의 지시였으며 ‘주변에서 전화가 너무 많이 온다’며 감찰을 중단시켰다”는 요지로 진술했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되고, 검찰이 이 진술을 토대로 상황을 짜맞추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분위기는 돌변했다.
검찰이 12월 13일 유재수 전 부시장을 기소하면서 "비리 혐의 중 상당 부분은 대통령비서실 특별감찰반 감찰 과정에서 이미 확인됐거나 확인이 가능했다"고 발표한 부분에 대해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직접 반박에 나섰다. 박형철의 이해할 수 없는 진술이 실제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이상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구명 청탁 전화’의 진실
조국 전 장관 변호인단은 검찰 소환 조사와 관련해 한두 번 입장문을 낸 것 외에는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확인되지 않은 검찰 진술’들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 특히 박형철이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내용이 언론을 뒤덮을 때도 함구로 일관했다.
이는 수사 및 재판 대응 전략과도 관련이 있지만, 박형철의 검찰 진술 관련 보도가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믿고 그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12월 26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조국 전 장관의 변호인인 김칠준 변호사는 ‘감찰 청탁 전화’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 정면으로 답변했다. 더 이상 박형철을 믿고 보호해줄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조 전 장관은 누구로부터도 청탁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박 비서관이나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이 ‘여기저기 청탁성 전화들이 온다’고 (하는 걸) 전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찰은 계속됐다”고 답변했다.
조국 수석은 그런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 유재수의 감찰이 진행되는 동안 백원우 비서관이 조 수석에게 “주변에서 전화가 많이 온다”는 얘기를 했고, 박형철 비서관도 중간보고 과정에서 “여기저기서 압력이 들어온다”는 얘기를 했으며, 조국 수석이 박형철 비서관에게 “백 비서관도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전한 것이 전부다.
전화 건은 감찰 진행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전화와 감찰 진행 여부를 결부시킨 논의도 전혀 없었다. 전화와 관계없이 감찰은 계속 진행됐으며, 박형철 비서관이 2017년 11월에 이르러 감찰을 계속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조치 의견’을 담은 최종 감찰보고서를 작성하여 보고한 것이다.
백원우 비서관의 말을 지나가듯 전했던 것에 불과했던 조국 수석의 말을 박형철은 “조국 수석이 ‘전화가 많이 온다’고 말했다”며 사실을 완전히 뒤틀어 진술했고, 검찰은 이 진술을 토대로 온갖 사실들을 억지로 꿰맞추고 있는 것이다.
‘유재수 감찰 건’의 유일한 증인 박형철
검찰은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의 “표창장, 나는 모른다” 한 마디를 근거로 정경심 교수를 수사하고 기소했다. 유재수 건을 가지고 조국 전 장관을 수사하고 구속영장까지 청구한 것도 오로지 박형철의 진술만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가 유재수 건에 대해 스스로 청와대 내에서 설명해왔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면 소위 ‘감찰 무마 의혹’ 사건은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었다. 박형철이 검찰 수사의 핵심 열쇠를 제공한 것이다.
박형철 전 비서관은 2018년 12월 19일 김태우의 의혹 제기에 직접 설명하기 위해 청와대 춘추관을 찾은 자리에서 "저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 반부패비서관으로 제 명예를 걸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 왔습니다"라는 말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때 “제 명예를 걸고...”까지 말하고는 울컥하면서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박형철은 검찰 출석 직전까지도 사건의 진상을 다시 확인하려는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아무 문제없는 일처리였다”고 재확인했다. 최초 문제가 불거졌던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1월 검찰에 출석하기 직전까지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유재수 감찰의 경위와 조치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단 한 번도 다른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그가 왜 검찰 조사실에서 표변하게 됐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기소가 분명해진 이상 그는 언젠가 재판정에서 이 사건의 유일한 증인으로서 조국 전 장관과 마주쳐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과연 그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조 전 장관을 마주 대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