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혼돈'의 시대를 위한 지도자... 조 바이든의 정치 역정(歷程)

이정필 기자 / 기사승인 : 2020-11-09 1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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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이 많고 참신성과는 거리가 먼 민주당 대통령

 

"당선자"란 표현이 마침내 방송을 탔다. 여전히 개표가 진행중이고 조지아주 재검표가 예상되지만 펜실베니아에서 승리를 굳힌 조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당선자다. 

 

그동안 민주당이 배출한 대통령에 비하면 가장 나이 많고 참신성하고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클린턴, 오바마 모두 40대에 대통령에 당선됐고 둘다 세대교체를 표방했다. 77세 바이든은 대선 꿈을 품어왔지만 항상 뒤쳐졌고 불운보다는 스스로 무너지고 미끄러졌다. 

 

간보기하다 그만두는게 그의 패턴. 그런 그가 트럼프의 실정을 틈타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미국 역시 좌우이념 격돌, 인종차별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의 준동, 코로나 팬더믹으로 깊은 상처를 입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바이든 당선자에게 거는 기대는 크지 않은 것 같다. 정말 47년동안 보여준 게 없는 그의 정치이력 때문일까. 

 

 

'차세대 케네디'로 등장, 곡절 겪다 대통령에

 

1988년, 차세대 케네디란 소리를 들으며 민주당 후보군의 선두주자였지만 표절시비와 거짓이력으로 자진사퇴. 이때부터 그는 워싱턴 정가의 실언전문가로 불렸다. 쓸데없이 농담같은 거짓말(Gaffe)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오늘날 트럼프에 비하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서도... 오바마 러닝메이트였을때 오죽하면 민주당캠페인 인사이더들이 말실수를 자주하던 그를 "Joe the Bomb"이란 별명을 붙였을까. 

 

하지만 47년 관록의 정치이력이 말해주듯 상원 법사위와 외교위를 통해 민주당의 어른으로 성장했다. 오바마를 반대했지만 두사람은 단 한번의 만남으로 친구가 됐다. 포용력과 이해심이 남다른 사람이라고 한다. 또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리더였다. 

 

시라큐즈 법대를 나온후 델라웨어주에서 공익변호사로 사회첫발을 내딛었다. 돈많이 주는 로펌의 제안도 있었지만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그는 약자를 돕고 싶었다. 개업 2년뒤 사건수임이 별로 없자 County Council 위원(시의원)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불행과 행운이 교차된 정치 역정

 

28살에 와이프와 두살바기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고 남은 두 아들을 혼자 키웠다. 이때부터 바이든은 아들과 시간을 더 갖기 위해 워싱턴 의사당까지 매일 기차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기차 내에서 서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대중친화력을 가진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퇴임때 다시 민주당 대선후보로 거론됐지만 걸프전에 참전했던 큰 아들이 뇌종양으로 사망하면서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민주당 후보들이 지나치게 이념적 좌편향으로 쏠렸기에 은퇴한 그를 다시 소환했다.

 

대학시절 바이든은 공화당 지지자였다. 민주당 출신의 델라웨어 주지사가 요즘 트럼프같은 인물로 하도 개판이어서 반대당을 자처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패정치인 닉슨을 혐오했던 바이든은 민주당 간판으로 공화당 출신의 델라웨어 현직 상원의원에 도전장을 냈다. 

 

당시 민주당 측에 인물이 없었기에 그냥 거저 먹은 후보진출이었다. 선거자금과 정치이력에서 훨씬 열세였지만 30살의 패기로 발로뛰는 선거전을 벌이면서 50.5% 지지를 확보해 미상원 역사상 6번째로 최연소 배지를 달았다.

 

 

시대와 성향, 린든 존슨과 닮은 꼴

 

그러고 보니 바이든은 LBJ로 통하는 린든 존슨과 많은 면에서 닮은 꼴이다. 시대상도 그렇다. 파시스트같은 인종차별주의자들과 흑인인권 운동이 격돌했던 60년대가 지금과 많이 닮은 꼴이다. 케네디를 가장 혐오했던 동료의원이 LBJ였다. 하지만 케네디가 대선티켓을 잡자마자 자신을 커버해줄 최고의 러닝메이트로 LBJ를 품었고 물과 기름 사이였던 두 사람은 협력관계를 만들어냈다. 

 

이후 LBJ는 대통령으로 케네디가 시도했지만 결코 의회를 통과할수없었던 민권법과 투표권 확대, 노인과 약자를 위한 메디케어, 메디캘 등 사회복지법을 통과시켰다. 베트남전으로 정치 인생이 마감됐지만 LBJ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사회보장제도와 인권제도는 불가능했다. LBJ는 텍사스의 맹주였고 의회를 이끌었던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47년 정치경력의 바이든을 보면 LBJ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개혁적이지도 않고 나이도 많고 타협과 협상의 달인이기에 당연한 예상이다.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바이든은 자신의 장점을 바탕으로 주어진 기회를 최대로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에서도 나는 기대가 크다. 

 

 

문 대통령과 잘 어울릴 갈등치유형 지도자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 큰 호감을 보여왔다. 북한 공습을 기획했던 클린턴은 DJ 햇볕정책의 든든한 지원자였다. 오바마 역시 한국의 교육열과 경제발전에 큰 호감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우리나라의 두 대통령이 기회를 차버렸다. 

 

바이든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지만 오히려 설득가능한 인물이며 문재인 대통령같은 인격자와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갈등과 혼돈이 전 지구를 뒤덮는 심각한 시대에 더 적합한 지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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