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훈 칼럼] 법원의 공소장 변경 불허의 의미에 대하여

박지훈 기자 / 기사승인 : 2019-12-11 08: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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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길을 선택하든 검찰에겐 파국이다. 이런 식의 파국 외통수는 일찌감치 예상되어왔다. 그리고 검찰의 무리수가 너무도 많이 겹치다보니,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욱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연출될 것이 확실시된다.
정경심 교수 구속영장 집행 /News1
정경심 교수 구속영장 집행 /News1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검찰이 9월 6일에 정경심 교수를 기소한 사문서위조 혐의에 대한 공소장 변경을 불허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수차 강력하게 반발했고, 재판부는 '이미 결정했다, '검찰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 안 해봤나'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끝내 공소장변경을 불허했다.


물론 공소장변경 불허 결정 외에도 검찰이 코너에 몰린 여러 결정들이 있었다. 가령 검찰이 비열한 꼼수로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무한정 지연시키고 있는 것에 대해, 법원이 계속 그러면 정교수 보석을 검토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정교수측은 보석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낮게 봐서 신청조차 하지 않았는데, 그 길을 오히려 재판부가 공식적으로 열어버렸다. (이쯤 되면, 수사기록 등사 문제와 무관하게 재판부가 보석에 대해 긍정적이라는 의미다. 지금쯤 변호인단이 보석신청을 진지하게 재검토중일 것이다)


공주대 인턴경력 문제도 기막힌 장면이었는데, 변호인이 거론하기도 전에 재판부가 먼저 변호인에게 공주대의 발표가 공주대의 최종적 입장인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말인즉슨, 공주대의 결정이 최종 확정된 것이라는 확인만 하면 재판부는 아예 혐의불성립으로 결론내리겠다는 의미다. 그리고 공주대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변호인 측의 문의를 받기도 전에 즉각적으로 '문제가 없다'라는 입장을 다시 한 번 공식적으로 발표해버렸다. 주요 혐의들 중 하나가 실제 재판을 하기도 전인 공판준비기일에 무죄 판단이 내려진 셈이다. (동서고금 사법 역사에 이런 일이 과연 전례가 있기나 할까?)


그런데 그런 다른 모든 통쾌한 장면들보다도 훨씬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 바로 '공소장변경 불허' 결정이다.




일단 재판부가 공소장변경을 불허한 것은 검찰이 불변의 대상인 동양대 표창장의 문안 외에는 다른 모든 사실관계를 다 변경해버렸기 때문이다. 동일사건이라고 인정할 수 없을 만큼 다 수정하면서 공소장을 바꾸겠다고 하자 재판부가 불허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검찰이 피의자 A씨를 2012년 이마트에서 물건을 훔쳤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치자. 그런데 몇 달이나 지나서 검찰이 그 공소장을 변경하겠다며 새로 들고 왔는데, 그 내용을 보니 훔쳤다는 마트도 이마트가 아닌 롯데마트이고, 더욱이 훔쳤다는 시기도 거의 1년이나 차이가 나며, 이외에도 공소장 내용 대부분이 달라졌다. 이전 공소장과 같은 것은 오직 '물건' 하나뿐이다.


이러면 과연 애초의 공소장과 수정하겠다는 공소장이 같은 사건이라고 할 수가 있는가. 훔친 물건이라는 혐의 자체가 송두리째 심각하게 의심스러워지는 것이 당연하다. 만약 검찰이 이런 식으로 멋대로 기소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사법행정은 온통 아수라장이 될 것이므로, 이렇게 사건의 내용 자체가 크게 달라지는 공소장변경은 형사소송법상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정말 중요한 것. 재판부가 공소장변경을 불허해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검찰은 지난 9월6일, 수사를 제대로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정교수를 기소했다. 여러 반대 증언에도 불구하고 동양대 총장 최성해 1인의 '어쨌든 위조된 표창장이다'라는 진술 단 하나에만 의존해서. 그래서 수사를 하지도 않았던 시점에 기소했던 지극히 부실한 공소장 내용만으로 정교수의 혐의를 입증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렸다.


검찰이 이전의 공소장과 완전히 달라진 내용으로 공소장을 변경하려 한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이전의 공소장이 완전히 엉터리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오늘 재판부도 "검사 스스로도 첫 공소 사실과 수사로 파악한 사실이 다르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검찰은 스스로 제출했던 엉터리 공소장 내용에 의거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검찰이 스스로 수사한 내용에 꿰어맞출 수도 없는 엉터리 공소장에 쓰여진 내용만으로 혐의입증을 한다는 건 당연히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아예 없어진다.



정경심 교수 1차 공소장
정경심 교수 1차 공소장


물론 이것만으로도 정교수에 대한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는 이미 거의 확정적으로 불성립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한발 더 나아가보면, 변호인의 재판전략에서의 활용에 따라 검찰을 완전히 파탄 수준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이 변경하려던 새 공소장 자체가 법정에서 변호인측에게 검찰의 공소사실을 통째로 부인하는 강력한 법리이자 정황증거가 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공소장이 변경되지 못하므로 검찰은 사문서위조 혐의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9월6일 공소장대로만 주장해야만 하는데('2012년 9월에, 동양대에서 위조가 이뤄졌다'), 변호인은 이 변경 시도했던 공소장에서 "2012년이 아닌 2013년, 동양대가 아닌 자택"으로 서술한 것을 강력한 근거로 '2012년도, 동양대도 아니다' 라고 주장하면 공소장의 공소사실이 통째로 부인되게 된다.


즉 불허된 11월11일 변경공소장은 공소장으로서의 전혀 효력은 없으면서도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 입장'을 서술한 공식문서인 것은 사실이고, 변호인이 그 점을 공략하면 11월11일 공소장이 도리어 9월6일 공소장의 법적 신뢰도를 무효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 '검찰의 공소장이 검찰의 공소장을 무효화시키는' 기막힌 결과가 되는 것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 사법역사상 전무후무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된다.


이대로라면, 검찰은 적어도 동양대 표창장 혐의에 대해서는 백전백패가 기정사실이다.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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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다고 해도 검찰에게 다른 방법은 있다. 애초의 9월6일 공소장을 아예 취소하고 완전히 새로 공소장을 제출하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매우 간단하고 실리적으로도 매우 좋다. 적어도 100% 패배가 예정된 9월6일 공소장대로 밀고나가다가 '온 국민이 알고 있었던 예정된 패배'를 맞는 것보단 나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 단순 형사사건 기소가 아니라 검찰이 정치적으로 기소한, 검찰권력 악용 사건이기 때문에 일이 더더욱 꼬여버린다.


9월6일 기소, 즉 공소장 제출이 여론과 정치판에 던져준 의미가 지대하기 때문이다. 9월6일 이전에도 조 전 장관 가족 관련의 여론은 매우 시끄러웠었고 몰지각한 비난도 빗발쳤지만, 사법적으로는 아무것도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그랬던 것이 9월6일 공소장 제출로 검찰의 공식 개입이 시작된 것이고, 사문서위조 혐의 이외의 모든 다른 혐의에 대한 수사들 역시 9월6일 기소를 시발점으로 해서 힘이 실리게 된 것이다.


공소시효 만료일이라면서 사안의 시급성이 매우 크다는 이유로 청문회 당일 밤에 기습적으로 제기한 기소 아닌가. 사실 검찰이 강변하는 정교수 및 조국 전 장관 수사의 모든 정당성은 적어도 여론과 정치판에 있어서는 그 9월6일 공소장에서 발단된 것이다.


(그런데 당장 검찰이 변경하려던 공소장에서, 공소시효 만료일이 그날이 아니었다고 스스로 뒤집었다. 그래서 11월11일 공소장변경을 신청하는 시점에서 이미 9월6일 공소장의 정치적 정당성은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조국 전 장관 청문회
조국 전 장관 청문회


기소가 9월6일이어야만 했던 이유는 검찰이 당초 주장했던 엉터리 '범행시점'에 따른 공소시효가 아니라, '장관 임명 저지'라는, '정치적 동기'였기 때문이다. 그날이 검찰에게는 '조국 장관 임명'의 현실화를 막기 위해 수를 써볼 수 있는 최후의 마지노선이었다.


그런데 검찰이 만약, '공소의 진정성'을 좀이라도 살려보려고 9월6일 기소를 아예 취소하고 기소를 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물론 그러면 검찰은 이 혐의에 대해 (매우매우 적지만) 승소할 실낱같은 가능성은 되살릴 수 있다. 그런데, 그러면 검찰출입 기자들을 선동해 만들어낸 여론이라는 '명분'이 다 무너지게 된다.


그것이 비록 다시 공소를 제기하기 위한 절차라고 강변을 하더라도, 이 사건에 별 관심이 없는 국민들에게조차 검찰의 수사 정당성은 와르르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검찰이 공식 개입한 시발점의 정당성이 무너지므로, 이후 수사의 객관성과 합리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래서 검찰은 동양대 표창장에 대한 사문서위조 혐의의 공소사실 대부분이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공소장변경을 하려고 신청한 것이다. 무리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그걸 재판부가 불허해버렸다. 그것도, 검찰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바람에 재판부의 불허 방침도 더더욱 뚜렷하게 부각되어버렸다.


이런 판이니, 검찰은 공소 취소 후 새로 기소하는 대신 다시 검토해서 공소장변경을 또 한 번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될까? 당연히 안 된다. 검찰의 무리한 항변으로 재판부가 언성까지 높이며 불허 의지를 더더욱 확실하게 못박아버렸는데, 검찰이 검토를 어떻게 하든 서류보완을 어떻게 하든 허용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런데도 다시 공소장변경을 시도하겠다고 밝힌 이유는 당장 어떻게도 변명할 말이 없으니 얼마간이라도 대응 논리를 개발할 시간을 벌어보려는 것이다. 빈깡통 기소 사실이 만천하에 대문짝만하게 드러나기 전에 말이다. 그런데 이 시간조차도 검찰 맘대로 늘어나지 않는다. 이미 공판이 진행 중인 상태라 일정을 정하는 것은 검찰이 아니라 재판부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News1
윤석열 검찰총장 /News1


만약 검찰의 조 전 장관 수사가 정치적 의도가 아닌 정당한 사유로 인한 것이었고 진정으로 정교수가 유죄라고 믿어서 기소한 것이라면 검찰은 여기서 망설일 필요가 티끌만큼도 없다. 뒤도 돌아볼 필요 없이 기존 공소장 취소 후 새로 기소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런데도 될 가능성이 전무한 공소장변경을 재차 추진하겠단다.


즉, 완전한 외통수다. 검찰이 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지만, 모조리 악몽같은 악수다. 그것도, 모두 매우 나쁜 악수들이다.


1. 이번과 같은 취지의 공소장변경을 내용보충만 해서 그대로 재신청한다.


→ 최악중의 최악의 수다. 재판부와 정면으로 싸워보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늘도 어거지를 쓰다가 재판부 입에서 퇴정조치까지 튀어나오게 만들었는데, 이걸 더 고집을 부렸다가는 정말로 검사가 법정에서 퇴정당하는 수가 생긴다. 검찰이 '공판 방해세력'이 되는 셈이다.


2. 기종 공소장 취소 후 11월11일 공소장 내용대로 처음부터 다시 공소를 제기한다.


→ 청문회날이던 9월6일 밤 자정을 앞두고 무리하게 기소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별 관심이 없었던 국민들에게까지 시인하는 셈이다. 지금까지의 조국 가족 수사의 전반적인 정당성에 대대적인 회의론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3. 재차 공소장변경을 신청하면서도 사문서위조 혐의는 기존 9월6일 공소장 내용대로 유지하고 공문서 위조, 펀드 관련 혐의 등 새 혐의 추가만 한다.


→ 검찰로서는 그나마 아주 조금쯤은 덜 나쁜 악수다. 하지만 앞서 쓴 대로 9월6일 공소장은 이미 동네방네 공개된 11월11일 공소장 내용으로 인해 매우 간단히 부인된다. 재판부가 쟁점이 덜한 사안을 먼저 정리하려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러면 공판 일정 초기에 역시 증거불충분으로 혐의 불성립으로 정리되어버릴 것이다. 2번의 결과와 거의 같은 결과가 되지만, 그래도 2번보단 '나가리판 상황'이 되는 것을 몇 주 정도는 지연시킬 수 있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검찰에겐 파국이다. 이런 식의 파국 외통수는 일찌감치 예상되어왔다. 그리고 검찰의 무리수가 너무도 많이 겹치다보니,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욱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연출될 것이 확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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