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철학이 없다는 한국일보 논설실장께

고일석 기자 / 기사승인 : 2019-11-19 07:33:28
  • -
  • +
  • 인쇄
님이 알고 있는 만큼 대통령도 알고 있습니다.
정시 확대 여론을 부추긴 것은 바로 언론들입니다.

오늘 자 한국일보 <[황상진 칼럼] 아직 임기 절반이 남았다>라는 칼럼에서 아래와 같이 쓰셨더군요.


"대통령은 ‘공정’과 검찰개혁을 다시 꺼냈다. 하지만 조국 사태로 드러난 입시 불공정과 특목고 문제 해결을 위해 갑자기 정시 확대와 특목고 등의 일반고화를 결정해 교육 주체들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게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면 좋겠지만 그 반대인 게 문제다. 정시 확대는 되레 ‘금수저’에 유리하고, 10여년의 학교교육 정상화 노력을 수포로 만들며, 특목고 등의 긍정적 기능은 어떻게 할건지 비난이 거세다. 정권의 교육 철학 부재와 무관심, 무능이 낳은 결과다."


정시 확대와 특목고의 일반고화가 정권의 교육 철학 부재와 무관심, 무능이 낳은 결과라고 하셨군요. 그러면 님께서 근무하고 있는 한국일보는 얼마나 철학이 넘치고 관심이 치열하며 유능한지 한 번 살펴볼까요?


최근 정부가 정시 확대 방침을 확정하기 전까지 지난 1년간 한국일보가 수시와 정시에 대해 어떤 기사를 썼는지 모아봤습니다.


▲ 숙명여고 쌍둥이 5차례 문제유출… 학종ㆍ수시 커지는 불신 2018.11.12.
▲ 교실은 수시세상, 복도로 나온 수능 2018.11.14.
▲ [오리지너] 사교육 '캐슬'② 대치동은 어떻게 사교육 '캐슬'이 되었나 2019.01.16.
▲ 원제는 ‘프린세스 메이커’였는데... ‘흥행 공식’ 깨고 우뚝 선 ‘SKY캐슬’2019.01.20
▲ [시론] 드라마 ‘SKY캐슬’과 한국교육의 위기 2019.02.18
▲ [지평선] 금수저 전형 2019.08.22.
▲ ‘정시 확대’ 요구로 번진 조국 딸 특혜입학 논란 2019.08.23
▲ “당락 기준 깜깜이” 다시 도마 오르는 학종 2019.09.02.


모두 수시가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는 제도라는 것을 강조한 기사들입니다. 그 외에 수시 축소 혹은 정시 확대(그 말이 그 말이죠)에 대한 찬반 논쟁을 소개한 기사도 있긴 합니다.


그리고 저 기사들에서 노골적으로 정시 확대를 주장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수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 자체가 정시 확대 주장을 부추기는 것이죠.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정시 확대에 대한 지지 여론이 원래부터 높습니다.그러다가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성공으로 그 여론이 더욱 높아지고 거세졌습니다. 오죽하면 조국 장관 사태가 정시확대론자들의 음모라는 말까지 나왔을까요.


가장 최근에 있었던 여론조사에서 정시확대에 대한 찬반 비율은 63.3% vs 22.3%입니다. 찬성이 세 배 가까이 돼죠. 이거 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바로 한국일보와 같은 철학이 넘치고, 관심이 치열하며 유능한 언론들입니다.


정시 확대 여론이 높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여론을 열심히 부추겼던 거죠. 틈만 나면 수시에 문제가 있는 양 부풀리고, 찬반 양론을 부추겨서 싸움을 붙여왔습니다.


황상진 실장은 정권이 교육 철학도 없고 관심도 없는데다가 무능하기까지 하다고 하셨는데요. 정시 확대가 오히려 '금수저'에게 유리하다는 사실, 바로 황실장께서 알고 계신 그 사실을 정권이 모르는 게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25일 교육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불신이 큰 상황에서 수시 비중을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시가 능사는 아닌 줄 알지만 그래도 지금으로서는 차라리 정시가 수시보다 공정하다는 입시 당사자들과 학부모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님이 알고 있는 만큼 대통령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공정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고, 그 국민들이 정시 확대를 저렇게 요구하는데 어떻게 모른 척을 합니까? 님께서는 그런 고매한 철학을 가지고 계신데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동료들은 어째 철학이 님과 달라서 국민들의 정시 확대 요구를 더욱 부채질하는 저 따위 기사들을 1년 내내 싸지른 것일까요?


이제 특목고 부분을 한 번 볼까요?


▲ [사설] 자사고 폐지 밀어붙이기에 일침 놓은 헌재 2019.04.12.
▲ [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 “외국어 잘 배우고 싶어 특목고 갔더니, 그냥 입시학원이더라” 2019.07.23
▲ [단독] 외고생들의 높은 성적, 외고 덕분이 아니다? 2019.07.25.
▲ [사설] 상산고 자사고 유지 결정…본질은 고교체제 개편이다 2019.07.27
▲ “난 능력 없는 사람”… 일반고 학생들 자존감 낮다 2019.09.22.
▲ [기자의 눈] 대입제도는 ‘눈치게임’으로 정하는 게 아니다 2019.10.25.


첫 번째에 있는 <[사설] 자사고 폐지 밀어붙이기에 일침 놓은 헌재>는 마치 정부의 자사고 폐지 방침에 반대하는 듯한 제목이지만 마지막 문단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대학 서열화가 고교 서열을 만들고, 또 초ㆍ중학교마저 입시 몰입 교육으로 몰아넣으면서 사교육 시장만 커져가고 있는 것이 한국 교육의 현실이다. 대학 입시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 없이 고교 입시 제도를 고친다는 것은 근본 해결책도 아니고 선후가 뒤바뀐 것이다. 헌재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교육 당국이 서열화ㆍ입시 경쟁을 방치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즉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고교서열화를 해결하라는 얘기입니다. 그 외의 기사도 모두 고교서열화 해소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님은 워낙 유능하셔서 "특목고 등의 긍정적 기능"을 살린 채 고교서열화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정권 욕만 하지 말고 그 방법 좀 속시원하게 풀어놔보시죠.


한 말씀만 덧붙이겠습니다. 수시 관련 기사들을 보면 조국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는 수시를 평이하게 비판하다가, 사태가 터지자 수시의 문제를 강력하게 부각시킵니다. 그러더니 정부의 정시 확대 방침이 결정되자 갑자기 정시 확대를 맹렬하게 비판합니다.


철학이 넘치고, 관심이 치열하며, 유능한 언론사는 이런 양아치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도 괜찮은 모양입니다.


[저작권자ⓒ 더브리핑.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