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배상제①] 언론과 언론단체들의 가당찮은 약자 코스프레

고일석 기자 / 기사승인 : 2021-02-17 12: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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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법원은 고위공직자와 정치인과 관련된 언론보도에 있어서는 언론자유를 최대한 적극적이고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권력에 대한 감시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는 언론의 가당찮은 약자 코스프레이며, 반대를 위한 그럴듯한 핑계일 뿐이다.

[징벌적 배상제①] 언론과 언론단체들의 가당찮은 약자 코스프레

[징벌적 배상제②] 삶 전체를 파멸시키는 악마적 언론 폭력

[징벌적 배상제③] 확인없이 허위보도, 반론에는 보복 보도

[징벌적 배상제④] 회복하기 어려운 이름없는 시민들의 상처

[징벌적 배상제⑤] 옆에서 변죽 올리는 언론학자와 기자단체

[징벌적 배상제⑥] 언론보도 피해구제 앞으로의 과제

 

▲ 2020년 10월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3단체가 주최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타당한가?' 긴급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정보통신망법 상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언론을 포함시켜 통과시키기로 했다. 또한 손해배상액의 산정 기준을 ‘허위보도로 인한 경제적 수익’으로 규정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의 언론중재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여권의 이런 방침에 대해 언론과 기자단체는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2월 11일 중앙일보는 <언론의 권력 감시 막겠다는 징벌적 손해배상>, 서울신문은 <언론 징벌적 손배, 초가삼간 태울 우려 있다>라는 사설을 실었다.

또한 지난해 6월 정청래 의원이 징벌적 손배제를 규정한 언론중재법을 발의했을 때도 기자협회는 바로 반대 성명을 냈고, 법무부가 징벌적 손배제에 언론을 포함시키는 상법 개정안을 제출했던 10월에도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타당한가’라는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열어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의 반대 논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권력에 대한 감시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언론을 둘러싼 환경과 언론의 행태를 볼 때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약자 코스프레에 불과하다.

 

 

▲ 2019년 언론관련판결분석보고서/언론중재위원회

 

 

언론 대상 승소율, 일반인 47.6% 고위공직자 29.7%

우리나라 법원은 명예훼손에 대한 판례를 통해 언론의 자유를 매우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특히 언론과 언론단체들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권력 감시에 있어서 원고가 공직자이거나 정치인일 경우 위법성 조각사유를 폭넓게 해석하고, 위법 사유를 매우 엄격하게 따지고 있다.

언론중재위원회가 발간한 <2019년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분석대상인 명예훼손 소송 365건 중에서 소위 ‘권력’에 해당하는 고위공직자와 정치인, 그리고 정당이 원고인 경우는 74건으로 20.2%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일반인 84건(23.0%)에 이은 두 번째에 해당한다.

그러나 승소율에 있어서는 29.7%로 일반인 원고 승소율 47.6%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또한 또 다른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의 경우 소송 건수는 34건 중 승소한 사건은 11건으로 32.4%에 머물고 있다. 일반인의 경우는 언론에 의한 명예훼손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고위공직자나 정치인, 그리고 기업의 경우는 명예훼손을 인정하는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탁현민 전 청와대 행정관. 여성신문에 대한 소송에서 법원은 언론자유를 최대한 넓게 해석하며 사실상 여성신문의 손을 들어주었다.


고위공직자 관련 사건, 언론 자유 폭넓게 인정

2017년 여성신문은 <[기고] 제가 바로 탁현민의 그 ‘여중생’입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고 이를 트위터에 공유하면서 기사 제목과 함께 “너무나 아픈 상처라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제 스스로도 애써 잊고 살려 했지만... 이렇게 털어놓아 봅니다.”라는 인용 문구를 붙였다. 

이 사건에 대해 1심 법원은 제목과 본문, 그리고 트위터 인용문 모두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1천만원의 배상을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기사 제목과 본문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트위터 인용문만을 명예훼손으로 판단했다. 배상액도 1심의 절반인 5백만원으로 판결했다.

 

형식상으로는 탁현민 전 행정관의 승소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언론자유를 최대한 폭넓게 인정하여 여성신문의 손을 들어준 사건이었다. 

2심 법원은 기사의 제목이 마치 원고가 이 사건 발언에 등장하는 여중생과 실제로 성관계를 하였고 기고자가 그 여중생인 것처럼 오해할 여지가 있으나 [기고]라는 표시를 붙여 외부 기고임을 표시하고 있고, 본문을 읽어보면 원고를 그런 오해의 소지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또한 “원고는 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서 이 사건 발언을 포함한 원고의 저서들 중 논란이 되었던 부분들은 공직자의 가치관, 도덕성 내지 성 인식에 관하여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이 경우 “공공적·사회적 의미를 가진 사안으로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트위터 인용은 트위터 사용자들이 본문을 보지 않고 인용문만 보고 판단할 수 있으며, [기고] 표시를 하지 않고 기사 일부를 발췌하여 그 내용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오인할 수 있도록 하여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 경향신문 2015년 4월 15일 보도


 

중요 부분 허위 있어도 공직자 감시와 비판은 면책

경향신문은 2015년 4월 성완종 전 의원이 사망 전 “지난번 재·보궐선거 때 이 총리의 선거사무소에 가서 한나절 정도 있으면서 이완구 총리에게 3000만원을 현금으로 주고 왔다”는 말을 남긴 것과 관련, “성 전 의원 측이 2013년 4월 4일 오후 4시 30분 이완구 총리의 부여 선거사무소에서 비타500박스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 전 총리는 관련 혐의에 대해 2017년 12월 무죄가 확정됐으나 2018년 경향신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금품 수수 사실의 허위 부분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비타500 박스 부분에 한하여 허위임을 주장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성 전 의원이 경향신문 기자와 통화하면서 현금 전달 매체가 무엇인지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성 전 회장 측근들이 관련 형사 사건에서 비타500 박스를 봤다고 진술하거나 경향신문 기자에게 언급했다고 진술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해당 보도가 허위라고 판단했다.

또한 “상표를 특정하면 기사 신빙성이 확연히 올라가 독자들도 보도내용이 진실이란 인상을 받을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며 “비타500 부분이 기사의 허위성 판단 기준이 되는 중요 부분이고, 이 전 총리의 명예를 훼손하는 구체적 사실 적시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피고들은 기사를 작성하기 전 금품 전달 매체가 비타500 박스가 확실한지에 관한 취재는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법원은 “피고들이 비타500 박스가 진실이라는 확신은 가질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하게 보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기사의 의혹 제기는 공직자의 청렴성·도덕성에 관한 언론의 감시와 비판기능의 중요성에 비추어 허용될 수 있는 범위 내의 것으로서 그 위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완구 전 총리의 청구를 기각했다.

 

▲ 대구방송(TBC)이 박지원 당시 국회의원을 지목해 "정치자금을 수수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보도 내용의 일부가 허위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권력 감시의 측면에서 명예훼손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일부 사실 허위라도 공익성·상당성 부합하면 면책

2008년 대구방송(TBC)이 ‘정치권 실세 금품전달’이라는 표제로 “대구지방검찰청 특수부는 청도 모 사학재단 실소유자인 서 모씨로부터 DJ정부 시절 핵심실세였던 박지원 의원 측에 3천만 원을 건넸다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보도했다.

법원은 보도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지는 않으나 취재원이 부장검사였고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으로 추가 취재가 어려웠다는 점을 들어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해 명예훼손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또한 “해당 보도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공직자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라고 하는 언론기능의 보호영역권이 좁아지게 만드는 경계선을 함부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법원은 더 나아가 “현역 국회의원은 공적인 인물이자 ‘공복’으로서 그들의 명예는 일한 결과에 따라 국민이 인정해줄 때 일시적으로 생기는 것이지 애초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공직자들이 억울하면 정정·반론보도청구제도나 언론중재위원회를 이용할 수도 있는데 명예훼손 관련법을 남용해온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러한 경향이 공직자를 감시하는 언론의 기능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며 “공직자의 잦은 소송으로 다양한 정보가 흘러나오는 언로가 막히면 민주주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력 감시 위축 운운은 언론의 엄살

이와 같이 우리나라 법원은 고위공직자와 정치인과 관련된 언론보도에 있어서는 언론자유를 적극적이고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법원은 원고가 고위공직자인 경우에는 면책 요건을 심각하게 결여하고 있는 경우에만 명예훼손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런 경우에서조차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넓게 인정하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언론인들 스스로 잘 알고 있다. 2018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기자들이 명예훼손으로 소송당할 위험을 느끼는 취재대상으로 일반시민이 65.1%로 가장 높고, 고위공직자는 39.5%, 대통령은 28.2%로 기자들이 느끼는 ‘소송 위험’은 ‘권력의 크기’에 반비례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권력에 대한 감시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는 언론의 가당찮은 약자 코스프레이며, 반대를 위한 그럴듯한 핑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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