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장 수사’는 어떻게 시작됐나②... 압수수색 전부터 분주했던 동양대와 검찰

고일석 기자 / 기사승인 : 2020-11-02 08:4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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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수사는 1년 넘는 재판이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 최성해의 “내가 내준 적 없다”는 말 한 마디 외에는 아무 것도 입증된 것이 없다. 궁지에 몰린 검찰은 급기야 “(검찰 출력본과) 정확히 비교하려면 원본을 가져와라”, “솔직히 (표창장을) 어떤 파일에서 어떻게 출력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아냐”는 자포자기식 막말을 내뱉기에 이르렀다.

 

 

검찰의 이러한 표면적인 수사 과정의 이면에는 검찰과 동양대의 ‘보이지 않는 분주한 움직임’이 있었다.

표창장 말도 나오기 전에 상황 파악 분주했던 동양대

동양대 최성해 총장은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이 있기 하루 전인 8월 26일 예정에 없던 학교법인 이사회를 개최했다. 최 전 총장은 이 회의에서 “조국 장관 후보의 일로 학교가 어려움에 처할지도 모른다”며 “2012년과 2013년 사이에 조 후보의 딸과 아들이 학교에서 받은 상장과 당시 상황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정규섭 행정지원처장 등은 2012년과 2013년 인문학 프로그램과 관련된 교수들과 조교들을 대상으로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고, 당시 교양학부장으로 프로그램을 총괄지휘했다가 이후 학교를 옮긴 김덕환 교수에게도 문의했다.

김 교수는 2020년 9월 24일 31차 공판에 출석해 “당시 8월 어느 날 최성해 총장과 정규섭 처장 등 학교 관계자들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걸려와 정 처장 및 학교 관계자, 그리고 최성해 총장과 차례로 통화했다”고 증언했다. 김 교수와 최 총장 및 학교 관계자의 통화는 모두 30여 곳에 대한 동시 압수수색이 벌어지던 8월 27일에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김덕환 교수는 정 처장이 “상장대장에 아들 상장 기록은 있는데 딸 표창장 기록이 없다”며 “이것 때문에 학교가 곤란해질지 몰라 상장대장을 폐기시켜버릴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한국당 의원이 상장 자료를 요청했는데 빨리 방침을 정해 답변해야 한다”고 말했다고도 증언했다.

당시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교육부를 통해 ‘총장상 수상자 이력’ 등의 자료를 요청했고, 이는 8월 27일 동양대학교에 접수됐다. 동양대는 8월 30일 “자료 없음으로 확인불가”라고 회신을 보냈다. 이후 “2014년 이전 상장대장은 폐기되어 없다”는 것이 동양대의 공식입장이 된다.


상장대장은 있었는가 없었는가

그러나 최성해 총장은 2019년 9월 4일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가 표창장을 주지 않았고, 표창장 발급 대장에도 조씨는 없다. 이와 관련된 결재도 한 적이 없다"고 말했고, 검찰 조사에서도 그렇게 답변했다. “2014년 이전 상장대장은 폐기되어 없다”는 학교 측의 공식입장과는 다른 것이다.

특히 2019년 9월 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상장 발부 대장에 (조 후보자 딸의) 이름이 없다. 상장 대장은 소각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며 “검찰 역시 2011년부터 대장을 다 확인해 봤다”고 말했다.

또한 최성해 총장은 2019년 8월 27일 서울에서 당시 최교일 한국당 의원의 주선으로 김병준 당시 한국당 비대위원장과 우동기 전 대구시교육감을 만난 사실을 법정에서도 인정했다.

2019년 8월 27일은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수색이 단행되고, 최 총장이 한국당 관계자들을 만나고, 곽상도는 상장대장 자료 제출을 동양대에 요청하고, 학교 관계자들은 표창장 관련 정황을 맹렬하게 파악하는 상황이 동시에 벌어진 숨가쁜 하루였다.


“동양대 표창장 사건은 학교 지원 거부에 대한 보복”

동양대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은 후 조국 후보자 측은 “최성해 총장이 학교 지원 청탁을 거절하자 과장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조 후보자 측은 “동양대가 최근 몇 년간 재정 지원 제한 대학으로 지정돼 어려움을 겪자 당시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조국 민정수석을 통해 제한을 풀어달라고 청탁했다”고 밝혔다.

최 총장은 이에 대해 즉각 부인했지만, 2019년 12월 19일 동양대 A교수가 “최성해 총장의 부탁을 받고 정경심 교수를 만났으나 정 교수가 조국 민정수석을 통한 지원 요청을 거부했다”는 녹취가 공개됐다. 동양대 A교수와 장경욱 교수가 10월 1일 통화한 내용을 녹음한 이 녹취록에는 ‘2018년 8월쯤’이라는 시기와 ‘신대방역 근처 한 식당’이라는 장소가 특정돼있다.

당시는 교육부의 2018년 대학기본역량진단 최종 결과 발표를 앞둔 때로, 하위권 대학은 대학정원을 감축해야 하고 재정지원도 받지 못하게 된다. 동양대는 결국 2018년 평가 결과 ‘역량강화대학’으로 분류되어 10% 정원 감축과 재정지원 제한의 조치를 받았다.

또한 이에 앞서 2019년 10월 1일 MBC PD수첩은 ‘장관과 표창장’ 편을 통해 사건 당시 최 총장이 “조국 장관 편 잘못 들었다가는 자유한국당이 정권 잡으면 학교 문 닫아야 된다. 자유한국당이 학교를 그냥 놔두겠냐”라고 말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 2019년 10월 1일 PD수첩



“직인 이미지 오려 붙이기”... 역정보를 동원한 검찰의 공작

2019년 9월 6일 정경심 교수에 대한 기소를 전후해 검찰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검찰은 9월 3일 김경록 PB로부터 확보한 정경심 교수의 연구실과 자택 PC의 하드디스크에서 ‘디지털 직인 이미지’가 발견됐다는 정보를 흘리기 시작했다.

검찰은 청문회를 하루 앞둔 9월 5일 검찰 출신 변호사를 통해 이런 사실을 정경심 교수에게 흘렸다. 정 교수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정 교수는 “상장과 표창장의 직인이 인주로 날인하는 것인지 디지털 이미지를 출력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 학교 관계자들에게 문의했다.

SBS는 기소 다음 날인 9월 7일 <단독/청문회 중 전격 기소…연구실 PC에 ‘총장 직인 파일’>이라는 보도를 내놨다. “정경심 교수의 연구실에 있던 PC에서 총장 직인을 컴퓨터 사진 파일로 만들어서 갖고 있던 게 발견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도는 ‘부실’의 의혹이 있던 9월 6일 기소가 사실은 ‘확증에 가까운 물증’을 토대로 이루어졌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연구실 PC에 ‘총장 직인 파일’은 있지도 않았고, 당시 검찰이 확보하고 있던 것은 ‘아들 상장’ 파일 밖에는 없었다.

검찰은 이후 재판과정에서 9월 5일 정경심 교수가 동양대 관계자들에게 ‘디지털 직인 이미지’와 관련해 질문을 한 것과 9월 7일 SBS의 <연구실 PC에 ‘총장 직인 파일’> 보도를 엮어, “정 교수가 SBS 보도를 보고, 자신의 위조 방법이 드러났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학교 관계자에게 문의한 것”이라는 프레임으로 몰고 가려고 했다.

‘디지털 직인 이미지’설은 2019년 9월 8일을 기점으로 “아들 상장에서 직인을 오려 딸 표창장을 만들어 제출했다”로 발전되어 유포됐다. 9월 10일 김경록 PB를 인터뷰하던 KBS 법조팀장은 이 말을 하면서 검찰이 확실한 물증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때는 ‘총장님 직인.jpg’ 파일이 있던 강사휴게실 PC가 발견되기도 전이다.

 

 

▲ 2019년 9월 7일 SBS 보도



추정과 공작으로 시작된 표창장 수사의 결말

최성해 총장은 표창장의 ‘ㅍ’도 나오지 않았을 시점에 2012년과 2013년이라는 시기까지 특정해서 표창장과 관련된 정황을 파악하기 시작했고, 상장대장의 존재에 대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성해 총장이 “동양대 압수수색이 있었던 9월 3일에야 표창장의 존재를 알았다”고 한 법정 증언은 명백한 위증이다.

검찰 역시 8월 27일 압수수색 이전부터 표창장의 존재를 미리 알고 부산대에서 표창장 사본을 압수하고 동양대를 압수수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거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기소 뒤에서야 동양대에 상주하면서 학교를 이잡듯이 뒤졌다. 그리고 상상력에 기초한 ‘직인 이미지 따붙이기’설을 의도적으로 유포해 피고인인 정경심 교수를 혼란케 하고, 언론들로 하여금 ‘앞서가기 보도’를 부추겼으며, 이를 재판 전략에 활용했다.

결국 이 수사는 1년 넘는 재판이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 최성해의 “내가 내준 적 없다”는 말 한 마디 외에는 아무 것도 입증된 것이 없다. 궁지에 몰린 검찰은 급기야 “(검찰 출력본과) 정확히 비교하려면 원본을 가져와라”, “솔직히 (표창장을) 어떤 파일에서 어떻게 출력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아냐”는 자포자기식 막말을 내뱉기에 이르렀다.

상상력에 의한 추정과 공작으로 시작된 전무후무한 표적수사의 허망하면서도 엽기적인 결말이다. 재판부는 10월 26일 재판에서 디지털 포렌식 이전 수준으로 재판의 쟁점을 다시 정리했다.

만약 재판장이 표창장 위조에 유죄판결을 내린다면 “피고인이 정상발급을 입증하지 못하고, 직인의 모양이 이상하므로 위조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조선시대 고을 사또의 재판에서조차 나올 수 없는 황당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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