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장 수사’는 어떻게 시작됐나①... 전무후무한 ‘무차별적 표적 수사’의 전형

고일석 기자 / 기사승인 : 2020-11-02 08:3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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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강제 수사 이전에 언론에 보도된 적도 없고, 첩보를 통해 정보를 입수한 적도 없으며, 제보에 의해 혐의가 접수되지도 않았고, 고소·고발도 없었다. 오로지 "조국 전 장관을 때려잡아 물러나게 하기 위한 일념"으로 강제수사에 들어가 피의자 조사도 없이 곧바로 기소했다.

 

 

재판장의 의미심장한 3가지 질문 

10월 26일 정경심 교수에 대한 33차 공판에서 임정엽 재판장은 의미심장한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변호인단이 ‘30초 검찰 시연’의 허구성을 공박하고, 포렌식 보고서의 위법성을 강조해 검찰과 변호인단의 충돌이 벌어진 직후였다.

“①그렇게 많은 학교관계자들을 불러서 신문했는데도 동양대 강사휴게실에서 내가 표창장을 한 거다 하는 직원은 발견 못했다는 거죠? ②피고인은 직인이 왜 직사각형으로 늘어났는지 모른다는 거죠? ③검사는 직인이 직사각형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위조라는 거죠?”

이는 재판의 쟁점을 디지털 증거의 제시 이전으로 되돌려 다시 정리한 것이었다. 재판장이 정리한 대로 검찰이 주장해온 ‘위조’의 증거는 ①총장의 승인이 없었고 ②피고인이 정상발급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고 ③의전원 입시에 제출한 사본의 직인이 직사각형으로 늘어나 있고 ④강사휴게실 PC에서 관련 파일들이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이 중 ④강사휴게실 PC에서 발견된 관련 파일들은 재판 초기에 강력한 증거인 것처럼 보였지만, 증거수집의 위법성과 함께 ‘위조 과정’에 대한 검찰 시연의 허술함으로 인해 더 이상 ‘위조’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사용되기는 어렵게 됐다는 판단이 재판장 질문의 바닥에 깔려 있다.

재판장이 ‘검찰 시연’과 이에 대한 변호인의 반박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제시하도록 요구한 것은, “검찰의 주장만으로는 ‘위조 과정’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었다.

더 나아가 증거수집 위법성과 관련해 “백 보 양보하더라도 레지스트리와 인터넷접속 기록 등 PC 사용기록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변호인의 주장은 너무나 명확한 것이어서, 재판부가 이를 부정할 다른 논거를 찾지 못한다면 7월 23일 24차 공판에서 검찰이 제시한 소위 ‘38분 타임라인’ 이후의 내용들은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에 있어 ①피고인이 정상발급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고 ②의전원 입시에 제출한 사본의 직인이 직사각형으로 늘어나 있으므로 위조로 봐야한다는, 재판 초기의 쟁점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심중을 내비친 것이다.


아무런 근거 없이 시작된 ‘표창장 수사’

그렇다면 우리는 이 수사가 처음에 어떻게 시작됐나를 원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검찰은 도대체 “동양대 표창장이 위조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언제, 왜,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검찰은 2019년 8월 27일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하면서 “이 사건은 국민적 관심이 큰 공적 사안으로서, 객관적 자료를 통해 사실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크고, 만약 자료 확보가 늦어질 경우 객관적 사실관계를 확인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처”라고 밝혔다.

그러나 ‘동양대 표창장’은 당시 ‘국민적 관심’은커녕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검찰은 부산대 의전원에 대해 장학금과 관련된 학사과, 학생과 외에 입학과도 함께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시켰다.

부산대 의전원은 ‘장학금’과 관련한 의혹이 있었을 뿐, 입학 과정에 대한 의혹은 이미 해명돼있었다. 당시 부산대 의전원 입학 관련 의혹은 의학교육입문검사(MEET)를 치르지 않았다는 것과 단국대 제1저자 논문이 의전원 입시에 제출됐다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미 8월 20일 “MEET 성적을 제출했고, 고교시절 논문은 제출 대상이 아니었다”는 인사청문회 준비단의 해명이 있었다.

즉 입학과를 뒤져볼 이유가 없었는데도 이를 포함시켜 입학 자료를 압수수색한 것이다. 검찰은 이를 통해 부산대 의전원에 제출된 동양대 표창장 사본을 압수한다. 이때만 해도 대외적으로 ‘동양대 표창장’은 전혀 거론된 적이 없다. 검찰은 무슨 근거로 부산대 의전원 입학과를 압수수색해서 표창장 사본을 찾아 가져간 것일까?


대외적으로는 전혀 근거가 없었던 동양대 압수수색

그러다가 인사청문회를 사흘 앞둔 9월 3일 느닷없이 동양대를 압수수색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그 표창장 내가 내준 적 없다”는 최성해 전 총장의 발언이 언론을 타게 되고, 곧바로 최 전 총장은 검찰 조사를 받는다.

언론들은 일제히 “조국 딸, 어머니 재직 대학서 총장상 받아…동양대 압수수색”이라고 보도하고, 이는 ‘특권을 이용한 스펙 만들기’로 포장되면서 9월 2일 11시간에 걸친 기자간담회를 통해 어느 정도 진정되던 여론을 다시 뒤집어놓게 된다.

형식상으로 본다면 최성해 총장의 조사 이전에 검찰이 ‘표창장 위조’ 혐의를 인지한 근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무 근거도 없이 동양대를 압수수색했고, 그 이후에 최 전 총장의 발언이 나온 것이다. 검찰은 재판 후반부에 이르러 “표창장 사본의 직인의 모양이 이상해서 위조를 의심했다”고 둘러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처음 듣는 소리”라며 황당해 했다.

검찰은 9월 6일 ‘물증’이라고는 전혀 없이 오로지 “내가 표창장 내준 적 없다”는 최 전 총장의 발언과 (검찰의 말을 그대로 믿더라도) “직인의 모양이 이상하다”는 의심만 있는 상태에서 공소시효를 이유로 기소를 단행한다. 당시 언론은 “검찰이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 관계가 혐의를 입증할 만큼 탄탄하다고 보고 기소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지만, 이것이 말짱 헛소리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9월 6일의 기소는 명백하게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국 당시 후보자가 청문회까지 치르고 임명을 기다리는 상태가 되자 검찰은 어쩔 수 없이 ‘수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 2019년 9월 3일 KBS 보도



기소 이후에야 시작된 ‘본격 수사’

9월 3일의 동양대 압수수색에서 별다른 실마리를 찾지 못했던 검찰은 청문회와 기소 다음 날인 9월 7일부터 동양대 기숙사 7층 게스트룸에 진을 치고 동양대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면서 동양대 관계자들을 줄줄이 불러 ‘표창장 발급의 전말’을 캐물었다.

그러다가 9월 10일 오후 인문관 강사휴게실에 방치돼있던 PC 2대를 발견하고 이들 컴퓨터에 집착하여 수 차례 부팅을 시도한 결과, 하나의 PC에서 ‘조국 폴더’라는 이름의 폴더를 찾아냈다. 그리고 밤 늦게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을 틈도 없이 곧바로 ‘임의제출’ 형식으로 압수해왔다. 그 PC에서 문제의 ‘총장님 직인,jpg’ 파일을 발견하고, 16일 쯤부터 ‘기생충식 표창장 위조’를 대대적으로 언론에 흘리게 된다.

이것이 검찰의 ‘동양대 표창장 수사’의 전말이다. 고소·고발이 없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어느 대목에서도 검찰이 어떤 실마리와 근거를 가지고 무엇을 한 흔적은 없다. 그저 “표창장이 위조됐다”는 가설 혹은 망상만을 가지고 기소부터 한 뒤에 동양대에 진을 치고 학교를 뒤지는 수사에 들어간 것이다.


전무후무한 엽기적 ‘표적 수사’

검사가 형사소송법에 따라 어떠한 범죄 혐의가 있다고 사료되어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삼은 다음 그 사람에 대하여 무슨 혐의가 없는지 수사를 하는 경우를 ‘표적수사’라고 한다.

형사소송법은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될 때” 수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그 수단 혹은 절차로는 ‘검사의 인지(認知)’와 피해자의 고소, 제3자의 고발 등이 있다. ‘인지’에는 언론보도 등으로 사회적 관심사가 되는 경우도 있고, 첩보 혹은 제보 등으로 검사가 혐의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표창장 수사’는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검찰의 강제 수사 이전에 언론에 보도된 적도 없고, 첩보를 통해 정보를 입수한 적도 없으며, 제보에 의해 혐의가 접수되지도 않았고, 고소·고발도 없었다. 오로지 "조국 전 장관을 때려잡아 물러나게 하기 위한 일념"으로 강제수사에 들어가 피의자 조사도 없이 곧바로 기소했다. 

더욱이 이 사건에서 ‘수사’라고 할 수 있는 행위는 기소 이후에 이루어졌다. 아무 근거도 없이 압수수색에 들어가고, 역시 아무 근거도 없이 기소를 하고, 그 이후에나 수사 비슷한 행위로 들어간 근대 사법 역사 이래 전무후무한 엽기적인 사건이다.

 

☞ 이어지는 기사

‘표창장 수사’는 어떻게 시작됐나②... 압수수색 전부터 분주했던 동양대와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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