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배상제③] 확인없이 허위보도, 반론에는 보복 보도

고일석 기자 / 기사승인 : 2021-02-19 08: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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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은 언론에 의해 피해를 입고도 대응과 소송을 꺼린다. 추가적인 피해를 감수하고 언론 권력에 맞서는 것 자체가 두렵고 힘든 일이며, 거기에 더해 2심, 3심까지 끌고가는 것도, 승소하더라도 피해에 대한 보상은커녕 소송비용조차 보상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징벌적 배상제①] 언론과 언론단체들의 가당찮은 약자 코스프레
[징벌적 배상제②] 삶 전체를 파멸시키는 악마적 언론 폭력
[징벌적 배상제③] 확인없이 허위보도, 반론에는 보복 보도
[징벌적 배상제④] 회복하기 어려운 이름없는 시민들의 상처
[징벌적 배상제⑤] 옆에서 변죽 올리는 언론학자와 기자단체
[징벌적 배상제⑥] 언론보도 피해구제 앞으로의 과제

 

 

언론의 폭력은 폭력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해명하고 반박하면 후속 보도와 반복 보도로 보복한다. 모든 언론들이 한 패가 되어 이 보복에 가담한다.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해서 패소하면 악착같이 항소해 3심까지 끌고 간다. 피해자는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언론에 끌려다녀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반인들은 언론에 의해 피해를 입고도 대응과 소송을 꺼린다. 추가적인 피해를 감수하고 언론 권력에 맞서는 것 자체가 두렵고 힘든 일이며, 거기에 더해 2심, 3심까지 끌고가는 것도 버거운데, 승소하더라도 피해에 대한 보상은커녕 소송비용조차 보상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 2016년 10월 21일 한국일보 보도


박진성 시인 사건... 한국일보의 확인 취재 없는 단정 보도

2016년 10월 19일 한 트위터 계정에 “작년 미성년자인 저는 저보다 나이가 20살 많은 시인에게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여성은 첫 글에서 상대를 “B”라고 칭했지만, 이후 박진성 시인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눈 뒤 “B가 박진성 시인”이라며 실명을 공개했다.

그 뒤 유사한 내용의 여러 트윗들이 올라왔고, 한국일보의 황수현 기자는 이틀 뒤 이 트윗들의 내용을 모아 「문화계 왜 이러나...이번엔 시인 상습 성추행 의혹」이라는 기사를 올렸다. 황수현은 이 기사에서 “박 시인이 여성들에게 ‘여자는 남자 맛을 알아야 한다’는 등의 부적절한 언행을 하고, 여성에게 키스를 하고 가슴을 만지는 등 추행을 하고, ‘다리 벌린 사진을 보내 달라’는 등의 성희롱을 했다”는 등의 트위터 내용들을 그대로 옮겼다.

박진성 시인은 기사가 게재된 직후 황수현과 카카오톡 메시지로 연락해 트위터를 게재한 여성들과의 카카오톡 대화를 갈무리한 파일들을 전송하며, 해당 여성들을 성추행하거나 강제적으로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황수현은 “제가 강간 여부를 판단해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 위치가 아니다. 제기된 의혹을 보도하고 거기에 대한 주변부의 맥락까지 함께 이야기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다”라는 취지로 답변한 뒤, 박 시인의 호소를 요약하여 간략한 반론만 원고에 추가했다.

한국일보와 황수현은 이틀 뒤인 10월 21일부터 후속보도를 내면서 박진성 시인 관련 내용을 지속적으로 게재하고 거론했다. 여성들의 주장의 상당 부분이 허위사실이라는 점을 입증하면서 호소했는데도 불구하고, 의혹을 더욱 기정사실화하여 관련기사에 끊임없이 인용하며 확대재생산한 것이다.

10월 21일 「문화계 왜 이러나…이번엔 시인 상습 성추행 의혹」
10월 23일 「박범신 팬 “반가워 안았는데 뭐가 문제냐”」
10월 23일 「[사설] 문화계 뼈아픈 자성 촉구하는 추악한 성추행 파문」
10월 27일 「[카드뉴스] “그는 우리를 ‘은교’라 불렀다”」
 


▲ 2016년 11월 7일 경향신문 보도



해명해도 무차별 확산 보도, 출판사는 즉시 출고정지 조치

한국일보의 첫 보도가 있었던 10월 21일 서울신문, 중앙일보, 스포츠서울 등에서도 트위터를 인용해 박 시인 관련 의혹을 보도했고, 이후 거의 모든 매체들이 앞다투어 뒤를 이었다.

박 시인에 대한 의혹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데는 연합뉴스의 역할이 컸다. 박 시인 관련 의혹을 무차별적으로 보도한 400여 개의 기사 중 연합뉴스를 인용해 보도한 기사가 70% 정도에 이르렀다.

첫 보도를 한 한국일보는 물론 의혹 기사를 게재한 모든 매체는 폭로자들은 물론 박 시인에게도 전혀 확인 취재를 하지 않은 채, 트위터의 포스팅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연합뉴스 등 통신 기사를 전재하면서 폭로자들의 주장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인 양 보도했다.

박 시인의 시집을 출판하고 있던 <문학과지성>사는 첫 보도가 있은 지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시집에 대한 출고 금지 조치를 내렸고, 박 시인과 출판계약을 맺었던 다른 출판사들은 모두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박 시인은 여러 차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 2020년 10월 15일 연합뉴스 보도


수사와 재판으로 확인된 허위사실, 그러나 반복되는 언론보도

폭로자 중 1명은 2017년 5월 박진성 시인을 강간 및 추행, 감금, 협박 등의 온갖 혐의로 고소했다가 강간 및 추행을 제외한 나머지 혐의들의 고소를 취하했다. 검찰은 그마저도 수사를 통해 합의된 성관계였다고 판단하고 박 시인을 불기소 처분했다.

폭로 두 달 전 박 시인을 만난 이 폭로자는 2016년 트위터로 폭로한 후 몇 달이 지난 2017년 5월이 돼서 고소를 하는 기이한 행태를 보였다. 박진성 시인은 이 폭로자를 무고죄로 고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찰은 무고죄와 함께 정보통신망법 상 허위사실 유포죄 등 모든 혐의를 인정하면서 “죄질이 불량하지만 초범이고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감안해 기소유예 처분했다. 또 다른 폭로자는 명예훼손이 인정돼 벌금 30만원의 약식명령 처분을 받았다.

박 시인과 관련된 허위사실을 실제로 있었던 사실인 양 유포하고 전파한 사람 중에 탁수정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박진성 시인과 교류가 있었던 점을 들면서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탁 씨는 박 시인 관련 의혹을 폭로한 여성들과 단톡방 등을 만들어 상호 교류하면서 박 시인에 대한 무고 행위를 독려했다. 탁 씨는 검찰에 의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 인정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민사 소송에서는 700만원의 배상을 판결받았다.

 

 

▲ 2018년 2월 7일 jtbc 뉴스룸


JTBC는 사건 초기 탁수정 씨를 박 시인의 제자라며 인터뷰해 보도했고, 2018년 2월에는 한 발 더 나아가 탁 씨를 스튜디오로 초청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인터뷰에서 탁수정 씨는 “박진성 같은 가해자가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해서 시를 쓴다. 그걸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다.

한겨레21은 2018년 3월 <백래시를 멈춰라>라는 표지 기사에서 탁수정 씨를 표지 인물로 내세우면서, 탁 씨가 기소유예 처분과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도 제목에 <문단 내 성폭력 돕다 ‘무고’ 낙인 찍힌 탁수정. “누구도 나(탁수정)를 무고 혐의로 고소하지 않았다”>라고 부제목을 붙여 마치 탁 씨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면서 ‘성폭력 폭로에 대한 반격’을 의미하는 ‘백래시’가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탁수정 조합원을 ‘무고’로 엮는 대표적 인물이 ㅂ시인”이라며 박진성 시인을 백래시의 대표적 인물로 지목했다.

 

 

 

▲ 2018년 3월 한겨레21 보도



법원, 한국일보 보도의 악의성과 불법성 강력하게 인정

박 시인은 2017년 1월 한국일보와 황수현 기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일보가 4차례의 보도에서 트위터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 대목은 18개에 이르렀다. 법원은 “박 시인이 제시한 카카오톡 대화 갈무리를 확인하면 해당 사실 18개 중 13개가 허위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짚었다.

법원은 ▲박진성 시인의 성폭력 의혹을 최초로 폭로했던 한 여성은 폭로 이후 박 시인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박 시인에게 돈을 요구하는 등 그 폭로의 의도가 매우 악질적이었던 점 ▲트위터 등 SNS는 익명성이 강해 신빙성이 낮고 ▲한국일보가 보도할 경우 SNS보다 훨씬 더 믿을 만한 정보로 인식할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 ▲최초 기사를 출구하기 이전까지 폭로 여성들은 물론 원고와의 아무런 전화 또는 대면 인터뷰를 하지 않았고 ▲심지어 원고가 성추행, 성폭행은 사실무근이라고 강하게 이의를 제기함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에 대한 직접 확인 취재를 하지 않은 채 후속기사와 사설, 트윗과 포스팅을 추가하며 오히려 관련 보도를 스스로 확대재생산한 점 등 한국일보 보도의 무책임함과 악의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1심은 정정보도와 5천만원의 손해배상을 판결했고, 2심이 진행 중이던 2019년 1월 양측의 합의로 종결됐다. 한국일보는 합의 후 해당 기사들을 삭제하고 정정보도문을 인터넷에 게재했다. 첫 보도가 있은 지 27개월, 소송을 제기한 이래 23개월 만이었다.

 

 

▲ 첫 보도 23개월 만에 게재된 한국일보의 정정보도문


150개 언론사 소송... 배상금보다 더 큰 소송비용

박진성 시인은 한국일보에 대한 소송 이후 연합뉴스, 뉴시스, 뉴스1, KBS, JTBC, 조선일보, 문화일보, TV조선 등 150개 언론사에 대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일부는 확정 판결과 합의 등으로 종결됐으나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패소에도 불구하고 항소를 거듭하며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가고 있다.

이는 자신의 잘못과 책임은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고 항변하는 대상을 끝까지 괴롭혀서 앙갚음을 하겠다는 또 하나의 악의적 폭력이다. 이들은 박진성 시인이 무혐의 처분을 받아 폭로된 내용이 사실무근이라는 것이 확인된 뒤에도 이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거나, 보도하더라도 “일부 무혐의”라며 축소하고 왜곡해서 보도하고 있다.

한국일보의 경우는 극단적인 악의가 인정되어 5천만원의 배상액이 판결됐지만, 다른 언론사들의 경우 배상금은 200만원, 400만원, 700만원, 1천만원 등에 불과하다. 모두 실질적인 손해배상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소송비용에도 턱없이 모자란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마치 언론사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는 것처럼 포장되고 있지만, 사실은 힘없는 시민들로 하여금 언론 권력에 항의라도 할 수 있게 하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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