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 변호사] 지극히 이례적이고 부적절한 기각결정문
‘범죄 소명’은 ‘입증’ 아닌 ‘심증’... 수사 필요성만 인정 ‘혐의 인정’으로 오인하게 만든 이해할 수 없는 결정문
형사소송법은 제201조제1항 본문 및 제70조제1항에서 구속사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다음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 검사는 관할 지방법원 판사에게 청구하여 구속영장을 발부 받아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다.
▲ 피의자에게 일정한 주거가 없는 경우
▲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경우
▲ 피의자가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경우
여기서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의심할 만한 이유”라는 것이지 유무죄 여부를 확정짓는 것이 아니다.
영장실질심사, 유무죄 판단하지 않고 판단할 수도 없어
영장실질심사는 판사가 구속 전 피의자를 직접 심문해서 구속 사유가 있는지 여부를 가리는 것으로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고 할 수도 없다. 유무죄를 가리려면 검찰이 유죄의 증거로 제출한 증거에 대한 조사를 엄격히 하고 여기에 대한 피고인의 방어권도 보장이 되어야 하는데 영장 실짐심사에서는 이런 것들이 모두 빠져있다.
검사가 제시하는 자료는 법정에서 판단의 대상이 되는 ‘증거’와는 법적 지위가 전혀 다르다. 판사는 단지 검사가 제시한 자료를 바탕으로 피의자의 인신을 구속해서 계속 수사할 필요가 있는지를 판단할 뿐이다. 계속 수사할 필요가 있는데 피의자가 주거가 일정치 않아 소환이 어렵다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거나, 도주의 우려가 있다면 계속 수사가 불가능하므로 인신을 구속하여 검찰로 하여금 계속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영장 제도의 취지다.
따라서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라는 것은 “수사를 더 해볼 필요가 있다”는 필요성을 가지는 정도면 충분하다. 결코 유무죄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영장 발부 혹은 기각 결정 사유에는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라고 쓰거나 “범죄가 소명됐다”거나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식으로 쓰지 유죄를 전제로 발부나 구속의 사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범죄가 소명됐다”는 표현에서도 ‘소명(疏明)’이란 증명(證明)보다 낮은 정도의 심증(心證)의 수준으로서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강한 ‘추측’이 가능하다”는 것이지 “범죄가 입증됐다”거나 “혐의가 입증됐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마치 유죄 판결을 내린 듯한 결정문
그런데 서울동부지법 권덕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조국 전 장관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면서 마치 유죄 판결을 내리는 듯한 표현을 쓰고 있다.
우선 “피의자가 직권을 남용하여 유○○에 대한 감찰을 중단한 결과”라고 하여 “피의자가 직권을 남용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단정 짓고 있고, ‘감찰 중단’이 아닌 ‘감찰 종료 후 조치’라는 피의자 측의 주장이 존재함에도 이를 ‘감찰 중단’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후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저해한 사정”이라고 하여 ‘범죄의 결과’가 이미 발생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어 “피의자의 사회적 지위, 가족관계, 구속 전 피의자심문 당시의 진술내용 및 태도, 피의자의 배우자가 최근에 다른 사건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점 등과, 범행 당시 피의자가 인식하고 있던 유○○의 비위내용, 유○○가 사표를 제출하는 조치는 이루어졌고, 피의자가 개인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이 사건 범행을 범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라며 마치 ‘정상(情狀) 참작’의 여지를 두는 듯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다.
그러나 구속 여부는 ▲ 범죄 소명 ▲ 주거확실 ▲ 증거인멸 우려 ▲ 도주 우려의 여부 및 유무만 따지면 되는 것이지 정상을 참작할 필요가 전혀 없으며, 설사 판사가 정상을 참작할 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더라도 그것을 굳이 결정문에 명기하지는 않는다.
또한 이 모든 참작 사유가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으로서 “피의자가 인식하고 있던 유○○의 비위내용, 유○○가 사표를 제출하는 조치는 이루어졌다”는 피의자 측 입장마저도 “범행 당시”라는 전제를 두어 ‘유죄 판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피의자를 ‘확정된 범죄자’로 낙인찍는 잘못된 사례
즉 전체적으로 “피의자가 죄를 졌지만 이러저러한 사정을 참작할 때 구속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말로 “유죄이지만 구속은 시키지 않는다”는 논리 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모든 면에서 지극히 이례적이고 부적절한 표현이다.
더욱이 권덕진 부장판사는 이 결정문 외에 보도진에게 따로 배포한 보도문에는 “죄질이 나쁘다”는 표현을 직접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구속영장 심사의 취지와 원칙, 그리고 관행으로 보더라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에 따라 언론들은 모두 “죄질이 나쁘다”는 언급을 빠짐없이 하고 있으며, 심지어 “법원이 혐의를 인정했다”는 있을 수 없는 표현마저 사용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영장실질심사는 죄질의 악성 여부를 따지거나 혐의를 입증하여 인정하는 절차가 아니다.
권덕진 부장판사가 왜 이런 이상한 결정문을 작성했는지 그 이유를 함부로 짐작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 결과로 가뜩이나 원래의 취지와는 무관하게 실질적인 ‘형벌’로 잘못 인식되고 있는 구속영장제도를 마치 유무죄를 따지는 절차로 오인하게 하고, 피의자를 ‘확정된 범죄자’로 낙인찍는 잘못된 사례를 남기게 됐다는 것은 대단히 우려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