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훈 칼럼] 범죄 소명? 그러나 조 전 장관의 완승
'범죄혐의 소명', '죄질이 좋지 않다' 큰 의미 없어 '증거인멸·도주우려 없음'으로 재청구 시도 봉쇄
"이 사건의 범죄 혐의는 소명됐다. 다만 이 사건 수사가 상당히 진행된 점 및 제반사정에 비추어 볼 때, 현 시점에서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에 해당하는 구속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 범행은 그 죄질이 좋지 않으나, 구속 전 피의자 심문 당시 피의자의 진술 내용 및 태도, 피의자의 배우자가 최근 다른 사건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점 등과 피의자를 구속하여할 정도로 범죄의 중대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려운 점,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한 점 등을 종합해보면,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에 해당하는 구속사유가 있다고 볼 수도 없다"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범죄혐의 소명', '죄질이 좋지 않다' 등이 아니다. 단지 영장판사의 판단에는 검찰 주장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는 의미에 불과하고, 불구속기소 이후 본안 소송에서 다툴 문제다. 물이 반이 든 컵을 보고는 보는 시각에 따라 '반이나' 혹은 '반밖에' 어떻게도 표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문제다.
여기서 진짜 중요한 부분은, '증거인멸 우려', '도망의 우려'가 모두 없다는 부분이다. 검찰은 오늘 영장심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도 조국 전 장관이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과 통화를 했다며 증거인멸 정황이 있다며 언플질을 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영장판사는 그런 '검찰왈 증거인멸 정황'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더 핵심적인 부분은 여기서부터다. 영장이 기각된 사유가 '증거인멸과 도망의 우려가 없음'이기 때문에, 적어도 이 '유재수 감찰' 관련 혐의로는 검찰이 영장을 재청구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 또다시 기각될 것이 거의 틀림없다. 그런 '우려'는 조 전 장관의 행동이 변수이지 검찰이 무슨 액션을 벌이든 달라지는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견상 불리한 정황인 것처럼 보이는 영장판사의 판시사항들이, 실질적으로는 조 전 장관에게는 강력한 방어막이 되는 결과까지 된다. 영장판사가 '범죄혐의가 소명된다'라고 해버렸으니 추가 증거를 보강해 범죄혐의를 더 증명하려는 노력도 아무 소용 없고, '죄질이 나쁘다'라고 명시했으니 죄질이 나쁘다고 주장을 더해봤자 아무 의미 없다. 즉, 아무리 열심히 추가 수사를 해서 정황증거를 덕지덕지 덧붙여봤자 법원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게 된다.
실제로 방금 여러 사례들을 찾아보니, 최초 기각 사유가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였던 영장청구 건들은 검찰이 영장을 재청구했을 때도 법원이 또다시 증거인멸 우려 없음을 이유로 들어 대부분 기각했다. 박병대 전 대법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국민의당 박준영, 이명박 청와대 장석명, 삼성바이오 김태한 대표,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 등등이 그랬다.
즉 이 '증거인멸 및 도망 우려 없음'이라는 영장기각 사유는, 검찰의 재청구 여지를 꺾어버리고, 설사 검찰이 재청구를 감행하더라도 또다시 기각할 준비를 미리 해놓은 셈이 된다.
물론, 검찰로서는 다른 건으로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영장 기각으로 이미 크게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발을 빼고는, 먼저 구속영장 시도로는 발을 뺐던 펀드나 인턴 관련의 혐의를 만지작거리며 영장을 청구하려 하면, 그야말로 모양 빠지게 된다. 이거 집적, 저거 집적 이런 모양새가 되지 않는가.
그렇다고 이 유재수 감찰 건으로 또다시 영장을 재청구 하면, 똑같이 증거인멸 없음으로 재기각될 가능성이 거의 확정적이다. 검찰은 완전히 진퇴양난이다. 조 전 장관과 가족의 고통만 아니라면, 검찰더러 또 재청구 하라고 약을 올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결과적으로 이 '구속영장 라운드'에서는 조 전 장관의 완승이다. 검찰출입기자들을 부려 일방적인 언플로 여론을 맘대로 끌고다니던 검찰의 '호시절'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