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형비례제, 다시 살펴봐야 할 지점들

50석으로 연동형비례제를 한다는 것은 마동석 정도의 거구를 티코에 구겨 넣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러자니 옷도 찢어지고 발도 삐져나오고 그러는 것입니다.

2019-12-20     고일석
/News1

선거법 협상이 타결 직전에서 틀어져 잠시 소강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선거법은 사실 욱하는 기분으로 받고 말고를 결정할 일이 아닌 것은 맞습니다.

특히 지금 막판 쟁점으로 남아 있는 석패율제만 해도 정의당의 완주로 접전지역에서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민주당의 문제의식을 단지 ‘가진 자의 욕심과 아집’으로 비난할 수만은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2기를 책임지고, 정권을 재창출하여 그 다음 정권의 전반기를 책임져야 할 민주당으로서는 한 석 한 석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당 의원들은 이참에 연동형비례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 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연동형비례제의 문제를 타결 직전까지 최대한 검토해서 보완할 수 있는 것은 보완해야 한 뒤에 통과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냥 미룰 수는 없겠지만 오늘 내일 중에 바로 결정을 해서 추진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좀 답답하더라도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우리도 연동형비례제에 대해 원래부터 갖고 있던 문제의식,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문제들에 대해 한 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우윤근 원내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앞에서 열린 '2015 다함께 정책엑스포' 광주광역시 정책홍보관을 찾아 윤장현 광주시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왼쪽은 이낙연 전남지사. 2015.4.6/뉴스1

연동형비례제의 대전제, 의원 정수 확대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2015년 4월, 당에서 개최한 정책엑스포에 참여해 ‘적정 국회의원 수’를 묻는 이벤트에서 “OECD 주요 국가와 비교했을 때 400명은 돼야 한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래야 “비례대표를 절반으로 늘리면서 정당명부 비례대표를 도입하고 직능 전문가를 비례대표로 모실 수도 있고 여성 30% 할당제도 가능하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같은 당에 있으면서 문재인 대표 하는 일에 맨날 테테거리만 하고 있던 안철수가 “우선은 국민들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습니다. 안철수는 ‘의원 수 100명 축소’를 주장한 바 있죠.

문재인 대표의 말이 알려지자 “줄여도 시원찮을 판에 100명이나 늘리다니 무슨 소리냐”는 시비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문재인 대표는 “퍼포먼스에 참여해 가볍게 (얘기)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이 일화는 대통령과 민주당이 연동형비례제에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연동형비례제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또 무엇 때문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지를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동형비례제를 제대로 하려면 비례의석이 넉넉해야 합니다. 지역구 의석과 비례의석이 꼭 1:1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2:1 정도는 돼야 합니다. 그래서 2015년 중앙선관위에서 내용상 연동형비례제와 같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하면서 의석을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으로 조정할 것을 함께 권유했습니다.

그 정도 돼야 지역구 의석과 정당득표율의 차이를 비례대표 의석으로 충분히 보충해줄 수 있습니다. 또한 지역구 의석이 많은 정당들도 각 당의 이념과 정체성에 맞게 비례의석을 운용할 수 있습니다. 비례의석이 제한되어 있으면 ‘득표율=의석’이라는 목표에서 한참 먼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고 지역구 의석이 많은 정당에는 비례의석이 한 석도 배정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려면 전체 의석을 늘려야 되고, 전체 의석을 그대로 둔 채 비례의석을 늘리려면 지역구 의석을 줄여야 합니다. 지역구 의석을 줄이는 것은 현역 의원들의 사활적 이익을 직접 건드려 통과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20대 총선 모의개표/News1

우리나라 정치개혁의 원흉 안철수

그런데 우리나라는 우선 국회의원 숫자 늘리는 것을 무슨 날강도짓으로 생각하는 여론이 너무나 크고 단단합니다. 언제 어느 때 무슨 조건을 걸고 여론조사를 해도 국회의원 숫자 늘리는 것을 절대 반대하는 여론은 60~70%를 넘습니다.

안철수의 “국회의석 100석 축소” 주장은 한편으로는 그런 여론에 아무 생각 없이 편승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반대하는 여론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안철수는 정치를 한답시고 나서서 우리나라 정치를 후퇴시키는 온갖 해악질을 해왔지만 그 중에서도 압권은 “국회의원 100명 축소” 주장입니다. 안철수야 말로 우리나라 정치개혁의 원흉 중의 원흉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비례대표에 대한 인식도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비례대표의 원형인 ‘전국구(全國區) 제도’는 ‘돈 전(錢)자’를 쓴 ‘전국구(錢國區)’로 불리면서 정치불신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정상적인 정치자금 조달이 쉽지 않았던 야당으로서는 특별당비나 정치헌금을 받고 전국구 순번을 배정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구 증가와 변화로 지역구를 늘릴 일이 생기면 언제나 비례의석을 축소시켜 왔습니다. 12대 국회에서 92석이었던 비례의석은 줄였다 다시 살렸다를 반복하다가 20대 국회에서는 47석까지 찌그러져 있습니다. 딱 반토막이 나있는 것입니다. 

최초에 비례의석을 75석으로 늘리고 지역구를 225석으로 줄여서 합의를 한 것은 애시당초 비례대표 47석으로는 따져보나마나 연동형비례제의 취지를 살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체 의석을 늘릴 수가 없으니 지역구를 28석 줄이고 비례대표를 75석으로 늘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구 축소 대상이 되는 의원들의 반발이 현실화되면서 다시 50석으로 줄였습니다. 따져보나마나 안 된다고 생각했던 원래의 47석에 겨우 3석 늘어난 것입니다.

이 토대 위에서 연동형비례제를 하려니 그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온갖 문제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50석으로 연동형비례제를 한다는 것은 마동석 정도의 거구를 티코에 구겨 넣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러자니 옷도 찢어지고 발도 삐져나오고 그러는 것입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심재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당원들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2019.12.20/뉴스1

연동형 캡과 비례위성정당

지금 당장 떠오르는 가장 큰 문제는 비례위성정당의 문제입니다. 알바니아에서 연동형비례제를 시행했다가 위성정당 문제 때문에 폐지됐다는 주장이 있지만 자유한국당 성향의 정치학자들이 말로만 하는 얘기라 근거가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근거가 있든 없든 현실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지금 공언하고 있는 대로 그런 짓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집단이고 법으로 막을 수도 없습니다. 위성정당과 위성 아닌 정당을 미리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연동형비례제를 하면서도 위성정당의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거대정당들로 하여금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려면 지역구 당선자가 많은 정당도 비례의석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쉬운 대로 현실적인 방법이 연동률을 낮추고 비례 배분 방식을 연동형과 병립형을 함께 적용하는 방식으로 현 개정안(원안)에서 채택한 방식입니다. 225+75의 구조에서는 비례의석을 소수당에게 많이 배분하더라도 약 40석 정도의 병립형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어서 각 당의 전체 의석이 줄어든 불이익을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을 만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비례의석이 50석으로 줄어도 소수정당에게만 할당되는 연동형 의석을 우선 배분하기 때문에 소수정당이 받을 불이익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거대정당은 10여석의 잔여의석에 대한 배분 밖에는 받을 수 없어 많아봐야 5~6석 정도 밖에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자유한국당처럼 과감하게 비례위성정당을 만들겠다는 욕구가 자연히 발생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연동형 캡(cap)입니다. 위성정당의 출현을 우려했던 민주당 의원들은 내부 논의 과정에서 최초 연동형 캡이 20석 정도는 돼야 하고 많이 양보해도 25석 이상은 절대로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 합의를 이뤄내야 하는 지도부에서 30석으로 양보했고, 이 안은 어쨌거나 18일 의원총회에서 수용이 됐습니다.

그러나 협상이 잠시 중단된 상황에서 30석 캡도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30석 캡이면 잔여의석이 20석이므로 자유한국당의 예상 득표율이 25%일 때 기대할 수 있는 비례의석은 5석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바로 위성정당을 추진할 것입니다.

 

4+1협상/News1

본격적인 다당제 구도,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그 다음으로는 우리나라 정치문화에 다당제가 적합한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양당제를 지향하면서 다당제를 추구하는 야릇한 전통이 있습니다. 매 선거마다 제3당이 출현했고 일정 이상의 지지를 얻어왔습니다. 또한 민주노동당에서 출발해 정의당에까지 이르는 진보정당도 성장했고, 보수진영에서는 극우정당까지 출현했습니다.

3% 제한 때문에 무한정 늘어날 수는 없겠지만 연동형비례제가 시행되면 최소한 민주당, 자한당, 정의당, 새보수당, 대안신당, 우리공화당 등 6개 정당은 확실하고 한두 개 정도의 소수정당이 더 추가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 경우 민주당의 과반 획득은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럼 또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약체 여당이 여러 야당들과 줄다리기를 해가며 국회를 운영해야 합니다.

체제가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협상과 협의의 문화가 생겨날지도 모르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20대 국회보다 더 험난한 지경이 되어 국회가 완전히 마비되는 경우가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국회에 대해 환경은 어렵게 만들고, 결과는 높게 요구하면서, 책임은 여당에 묻는 문화가 있습니다. 사실상 연동형비례제와 다당제는 의원내각제를 전제로 운영되는 제도입니다. 대통령제의 다당제는 20대 국회에서 경험했듯이 대통령의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환경은 더욱 열악하게 만들면서 그 책임을 대통령과 여당에게만 지우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당제 문화는 여전히 존재하므로 의석만 충분하다면 다당제라도 집권당이 한두 당과 연합하여 주도권을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당제에 연동형 비례제에서 여당이 어느 정도라도 충분한 의석을 확보하려면 전체 의석이 늘어나야 하는데 의석 늘리는 것은 또 국민들이 절대로 반대하지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2019.12.18/뉴스1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온 연동형비례제, 앞으로의 과제는

지금까지 살펴본 문제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온 마당에 갑자기 연동형비례제를 포기하거나 보류하겠다고 나설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들을 최대한 보완하고 방비하는 선에서 통과시킨 뒤 운영의 묘를 살려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연동형비례제를 채택하는 것을 전제로 다음 국회에서 향후에 합의를 이뤄내야 할 과제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180석을 실질적인 가결선으로 삼고 있는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다당제를 하려면 단독이든 연합이든 과반 의석으로 모든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당 우호 의석을 180석이 되도록 해야 하는 어려운 선결 과제가 존재합니다.)

두 번째는 비례성과 대표성을 확대하더라도 득표율과 의석을 반드시 1대1로 맞춰야하는 것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독일식 연동형비례제가 가장 이상적인 제도라는 근거 없는 허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득표율:의석=1:1’은 지역구 의석이 가지는 정치적 기능과 관계 없이 그저 단순한 '의석 1개'로만 계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당의 득표율을 지역구 투표와 정당투표를 합산하여 계산하든지, 비례 의석이 늘어나더라도 50% 연동률을 유지하고 연동형과 병립형의 비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등의 방법으로 ‘득표율:의석=1:1’에 대한 지향을 어느 선에서 멈추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뭐니뭐니 해도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고 비례대표도 늘려야 합니다. 이는 곧 지긋지긋한 정치혐오 문화를 걷어내는 노력의 시작이면서 결과이기도 합니다. 비록 지금은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30%에 불과하지만 정치계와 시민들이 함께 노력해서 다음 다음 국회는 최소한 30명 정도는 증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선 현재 파악되는 문제들을 최대한 보완하고 방비한 상태에서 연동형비례제가 도입된 후 이런 조건들만 갖춰지면 연동형비례제의 장점은 살리면서 단점은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