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협상, 그 복잡한 방정식... 연동형 ‘캡’과 교차투표

계산 방식보다 더 복잡한 연동형 비례제의 환경 파멸적 결과를 가져오게 될 진영 내의 교차투표 민주당 수십 석을 양보한 바탕에서 이루어지는 연동형 협상

2019-12-14     고일석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김관영 원내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공개 모임 후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야 3당 대표자들은 이날 선거법 단일안을 위해 모였다. 2019.12.13/뉴스1

계산 방식보다 더 복잡한 연동형 비례제의 환경

연동형 비례제는 의석 산정 방식이 매우 복잡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복잡한 것은 연동형 비례제를 둘러싼 환경이다. (현재의 개정안은 ‘연동형 비례제’보다는 ‘준연동형 비례제’가 맞는 표현이지만 편의상 ‘연동형 비례제’라고 하기로 하자.)

손익만을 놓고 본다면 연동형 비례제는 민주당은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추진하는 과제다.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의석이 득표율에 근접하는 선거제도를 추구하고 있었고,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선관위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채택해 당시 문재인 대표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직접 담판을 벌이기도 했다. (선관위 제안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제로 부를 수 있다.)

2017년 대선에서는 연동형 비례제의 헌법적 근간이 되는 ‘비례성의 원칙’을 헌법에 명시하기로 공약했고 2018년 대통령 개헌안에 이 내용을 담았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최고조로 달했던 2018년 지방선거 결과를 현행 선거법으로 시뮬레이션 하면 200석이 넘는 의석을 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의원들은 누구 하나도 2016년 총선 이전에 정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혹은 ‘연동형 비례제’에 대한 당론을 변경할 생각을 가진 적이 없다. 내가 보기엔 바보들 같았다.

정의당과 바미당, 민평당이 연동형 적용 30석과 권역별 석패율제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당의 최종안을 거부했다. 대안신당은 민주당안에 동의했다. 바미당과 민평당이 최종안을 거부하고 있지만 이는 정의당이 강하게 거부하는 데에 동조하는 정도일 뿐 민주당 최종안을 가장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는 곳은 정의당이다.

 

연동형 비례제의 모델인 독일 의회

비례의석 확대가 필수적인 연동형 비례제

연동형 비례제는 지역구 당선 의석이 득표율에 모자랄 경우 이를 비례의석으로 채워주는 방식이다. 즉 의석이 100석이라면 득표율이 20%인데 지역구 의석을 15석 밖에 얻지 못했다면 비례의석으로 5석을 채워 20%에 해당하는 20석을 채워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비례의석이 많아야 한다. 연동형 비례제의 모델 국가인 독일은 지역구 299석, 비례대표 299석으로 50대50이다. 그래서 2016년 중앙선관위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했을 때도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을 제안했었다.

그런데 선관위안 대로 한다면 지역구 의석을 한꺼번에 53석을 줄여야 한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의석 수를 300석에서 더 늘리면 된다. 그러나 지금의 국민 정서는 국회 의석을 줄이면 줄였지 한 석이라도 늘리면 폭동이라도 일으킬 분위기다.

이처럼 전체 의석을 늘리는 것이나 비례의석을 늘리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연동형 비례제는 어쩔 수 없이 제한적이거나, 어떤 측면에서는 기형적인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전체 의석을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비례의석을 확대하려니 결국 지역구 의석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패스트트랙에 올라가 있는 선거법 개정안에서는 현행 47석인 비례의석을 75석으로 늘리고 지역구 의석을 28석 줄이는 것으로 합의했다.

여당인 민주당은 물론 패스트트랙 당사자였던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역시 지역구 의석을 줄일 경우 1차적인 대상이 될 농촌지역 의원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연동형 비례제의 대의를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한 것이다.

그러나 선거가 다가오고 야권의 분열이 가속화되자 현역 의원들은 자신들의 지역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해졌다. 특히 민주평화당은 말할 것도 없고 패스트트랙에 동의하는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대부분 호남 지역 의원들이다. 이들은 여당인 민주당과 경쟁해야 하는데 지역구마저 통폐합되면 더욱 어려운 싸움이 된다.

그래서 비례의석을 50석으로 줄이고 3석의 통폐합 지역구는 농촌이 아닌 수도권을 대상으로 하기로 했다. 이는 자유한국당도 합의에 참여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염두에 둔 것으로 연동형 비례제의 가장 큰 수혜자인 정의당이 크게 양보한 것이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선거법 협상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윤호중 사무총장은 4+1 협의체를 통해 선거법에 대해 잠정합의안을 만들었다가 최종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에 대해 설명했다. 2019.12.13/뉴스1

민주당이 비례의석을 가질 권리

민주당의 비례 의석도 문제가 된다. 완전 연동형 비례제로 실시할 경우 민주당은 비례의석을 한 석도 배정받지 못한다. 비례대표는 단순한 의석이 아니라 지역구 당선이 쉽지 않은 소수자·청년·전문가들을 의회로 진출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당초 연동률을 50%로 하기로 했다. 1차적으로 전체 의석에서 득표율에 비례하여 비례의석을 배분한 후 남는 의석을 정당득표율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정의당은 물론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이 양보한 부분이다.

그런데 비례의석을 50석으로 줄이다보니 이 역시 민주당에는 비례의석이 전혀 배분되지 않거나 극소수의 의석만 배정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연동형으로 배분되는 의석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캡’ 방식을 제안했다. 처음에는 25석을 제안했다가 최종안으로 30석으로 올려 제안했고 이에 대해 바른미래당과 대안신당이 동의했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지금 정도로 유지되는 것을 상정한다면 연동형 적용 의석에서 민주당에 배정될 의석은 없다. 민주당 득표율이 만약 40%라면 정당득표율로 배정되는 20석에서 민주당에 배정되는 의석은 8석이다. 이 ‘캡’이 없다면 민주당에는 비례의석이 전혀 배분되지 않거나 극소수의 의석만 배정될 수 있다.

이에 정의당은 ‘캡’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협상대표인 김관영 의원이 동의했던 바른미래당도 손학규 대표가 정의당에 입장에 동조하여 민주당안을 거부해놓은 상태다.

그러나 캡이 없다면 당초 패스트트랙 합의 당시 민주당에게 소수자와 전문가를 비례후보로 진출시킬 여지를 보장해준다는 당초 합의의 취지가 사라져버린다.

 

대한애국당/News1

파멸적 결과를 가져오게 될 보수 진영의 교차투표

더 중요한 것은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비례 의석을 거의 배정받지 못할 경우 이 두 당에 대한 정당투표는 사실상 사표(死票)가 된다는 것이다. 지지자들로서 정당투표를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줄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지지층이 민주당과 일부 겹치는 정의당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정당 투표를 정의당으로 유도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이것이 자유한국당 진영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정체성이 거의 같은 대한애국당 등과 연합하여 지역구 투표는 자유한국당, 정당투표는 대한애국당으로 하기로 하고 선거에 임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 지지자로서는 자유한국당에 투표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정당투표를 대한애국당에 던져주는 것은 전혀 아까운 일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대한애국당은 정의당을 능가하는 의석을 차지할 수도 있다. 이것은 민주당이나 정의당이나 둘 다 파멸적인 결과가 된다. 그래서 민주당은 30석 캡을 마지노선으로 제시하고 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오른쪽부터 시계방향) 의원,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 유성엽 대안신당 창당준비위원장, 박주현 민주평화당 의원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야 4+1 선거법 협의체 회의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9.12.8/뉴스1

민주당이 이미 수십 석을 양보한 바탕에서 이루어지는 연동형 협상

민주당이 제안한 최종안의 핵심은 두 가지다. ▲ 30석 캡과 ▲ 6개 권역별 석패율제다. 그러나 정의당은 이 두 사안 중에 ‘30석 캡’만 거론하면서 마치 민주당의 의석 한두 개에 연연하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캡이 있고 없고에 따라 한두 석만 차이나는 것도 아니지만, 민주당이 ‘캡’을 요구하는 이유는 의석 한두 석을 더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을 소속의 소수자와 청년, 여성, 전문가를 의회로 진출시킬 수 있는 여지를 보장받기 위한 것이고, 1, 2당이 비례의석을 거의 확보할 수 없을 때 생길 수 있는 보수진영 내 교차투표의 파멸적인 결과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환경에는 눈을 감은 채 한두 석 더 갖겠다고 협상을 교착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은 정의당을 포함한 야3당이다. 

이는 열린우리당 이래 의석의 비례성 원칙을 흔들림 없이 추구해온 민주당의 의지를 마치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담보처럼 여기고, 민주당이 반드시 20대 국회 내에 통과시키려는 검찰개혁법안을 볼모로 잡아 그야말로 자신들의 의석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몸부림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연동형 비례제 협상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국회 내의 모든 정파들이 각기 자신의 몫을 양보하고 배려하는 바탕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정의당은 민주당이 한두 석 정도가 아니라 수십 석을 이미 양보한 상태에서 연동형 비례제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그들이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비례의석이 10석이든 20석이든 그것이 모두 민주당이 양보해 넘겨준 의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